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8.08.06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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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들이 아우성인 가운데 건물주들이 덤터기로 욕을 먹고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세상의 부러움을 사는 건물주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에 천불이 나고 있는 건물주도 많다.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에 3층짜리 건물을 가진 A씨(70). 바닥 면적 130평인 그의 건물은 1층에서 3층까지 통으로 1년째 비어 있다. 몇 년 전까지 1층엔 슈퍼마켓이 들어서 영업을 하고 있었으나 장사가 되지 않자 2년 전에 나가버렸다. 2층에 세 들었던 영업 대리점도 1년 전에 나갔으나 후속 임차인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3층도 마찬가지.

10년 전까지만 해도 억대 보증금에 월세만 1000만원 가까이 받던 건물이 졸지에 건물 관리비만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그 사이 빚도 많이 늘었다.

세입자에게 받았던 보증금을 돌려주려고 은행에 건물을 담보로 잡힌 탓이다. 건물의 가치도 뚝 떨어졌다. 잘 나갈 때 20억원을 호가했다는 건물은 이젠 10억원에 내어놓아도 임자가 없는 지경이다. 팔아도 은행 돈 갚고 나면 손에 쥘 것 한 푼 없는 `깡통 상가'가 된다.

청주에는 분양한 지 오래된 아파트 단지 부근 상권에 이러한 건물이 많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상권 주변 주민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상권이 침체하고, 상가 건물값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진행 중인 것이다.

6일 오전, 대전지법 천안지원 101호 경매 전담 법정.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의 상가 2건이 경매로 나왔는데 모두 법원 감정가의 49% 선에서 낙찰됐다. 감정가가 2억9900만원인 상가 건물이 모두 1억4651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통상 법원 감정가가 시세의 80~90%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시가의 30%대 수준에 팔린 것이다.

앞서 지난달 23일에는 서북구 성정동의 한 상가 건물이 감정가의 24%에 낙찰되기도 했다. 토지 지분 35평, 건평 144평인 이 건물은 8억3300만원이 법원 감정액이었으나 4차례나 유찰된 끝에 2억원에 팔렸다.

놀랍게도 이들 상가는 천안에서 지금도 잘 나간다는 두정동 먹자골목 상권과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룸살롱' 상권에 위치해 있다.

그나마 아직 상권이 살아있는 이들 지역은 좀 낫다. 구도심 지역인 동남구 천안역 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더 형편없는 가격에 팔린 건물도 쉬 찾아볼 수 있다. 올해 1월에 경매장에 나온 동남구 대흥동의 극장 건물 1층 상가는 1차 경매 때 최저 입찰가가 2억4000만원이었는데 여덟 차례 유찰된 끝에 감정가의 8.2%인 단돈 1970만원에 낙찰됐다. 인근 영성동의 2억7000만원 짜리 상가 건물은 감정가의 34%인 9500만원에 팔렸으며, 20여 년 전만 해도 어깨가 부딪쳐 못 다닐 정도의 번화가였던 명동거리의 한 상가는 감정가의 20%에도 임자를 찾지 못하고 유찰됐다.

이런 건물을 소유했던 건물주에게 `조물주 위의 건물주'는 언감생심이며, 불유쾌한 농담일 뿐이다. 최저임금 논란의 와중에 졸지에 바가지로 욕을 먹고 있는 건물주들. 그러나 A씨 같은 `깡통 건물주'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건물주라고 다 싸잡아 욕하진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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