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뒤러
알브레히트 뒤러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8.08.02 2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주로 손으로 머리를 괴고 앉아 고민하신다고요? 하지만 어떤 영감도 떠오를 것 같지 않아 두렵다고요? 되는 일이 없어 종종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고요? 그렇다면 저의 진단은 멜랑콜리아입니다. 당신은 우울증에 걸린 것입니다.

16C 독일의 미술가였던 알브레히트 뒤러가 한 여인에게 멜랑콜리아, 즉 우울증을 진단했다. `멜랑콜리아'라는 병은 고대 그리스철학의 4원소설(물, 불, 공기, 흙)을 거쳐 중세 의학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인 히포크라테스의 4가지 체액설(담즙질, 점액질, 다혈질, 울질)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점성학에서는 우울증이 부정적인 속성인 차가움과 어두움의 상징인 토성의 영향으로 생긴다고 믿었는데, 작품 속에서 `밤'의 엠블렘 박쥐, 우울과 광기를 상징하는 피골이 상접한 개의 이미지는 이 우울질의 알레고리(이미지 자체의 의미가 아닌 다른 것을 말하는 방식)로 여겨진다. 대부분 태양계의 행성의 이름이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신들의 이름에서 유래하듯이, 토성은 크로노스의 별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자신의 자식들을 먹어치운 크로노스는 종종 시간의 신으로 대변되는데, 바로 이 시간성의 알레고리가 건물 위의 모래시계와 벨, 평형을 이루는 저울, 그리고 가장 뒤쪽 배경의 지는 해이다. 온갖 실용적 기술을 동원하여 수학적 계산을 통해 시간 안에 뭔가를 이루려 하지만 모래시계는 이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고, 하루 종일 시름했지만 태양은 이미 지고 있다. 여인은 좌절하고 멜랑콜리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뒤러는 한 가지 대안 책은 남겨 두었다. 그것은 건물 벽 위에 있는 4×4의 마방진인데, 가로와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계산해도 숫자들의 합이 34가 나오는 신기한 숫자판이다. 당시에는 이 마방진이 행운의 행성인 목성의 상징이었고, 크로노스를 내친 제우스의 승리를 축하한 행운의 부적과도 같은 것으로서 우울한 기질을 전환시켜 준다고 믿었던 탓이다. 그렇다면 이 마방진은 우울증 치료의 알레고리인 셈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이 마방진 하단의 두 개의 스퀘어 안에 숫자 15와 14를 나란히 배치하여 이 판화의 제작연도를 표시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예술가들이 장인이라는 이름에서 분리되어 예술가로서 독립적인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가던 시기였다. 뒤러는 스스로를 장인이기보다는 지식인이기를 원했던 최초의 미술가 중 한 명으로서 그에게는 `르네상스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에 따르면 이 동판화는 창조적인 활동과 천재성으로 인한 멜랑콜리아와 관계된 “뒤러 정신의 자화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 문학, 철학, 예술에서 뛰어난 사람들은 우울증 환자”라고 말하듯이, 뒤러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하고 싶었던 그의 페르소나가 우울증을 유발시켰는지도 모른다.

이 판화 작품은 어떤 명확한 정의 없이 학자들에 의해 제각각의 방식대로 해석되어왔고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작품을 마음대로 해부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수께끼 같은 상징물들을 우리 모두 자유롭게 해석해보는 것은 어떨까?

/미술학 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