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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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8.08.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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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눈을 감았다. 바라보지 않는다. 노래를 부르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조차 감고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영혼으로 보는 남자는 이탈리아의 스타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다. 오래전, 영국의 팝페라 가수, 사라브라이트만과 듀엣으로 부른 노래를 듣고 열렬한 팬이 되었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서정적인 노랫말이 좋았다. 출중한 외모도 한몫했으리라. 그는 클래식과 팝을 넘나드는 특이한 창법으로 소리에 영혼을 불어넣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네 살 때, 당뇨병으로 시력이 매우 약한 아이였다고 했다. 열두 살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 머리에 공을 맞고 충격으로 완전히 실명되었지만, 법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성악가가 되었다. 안드레아 보첼리는 시각장애인으로서는 드물게 부와 명예를 얻은 성공한 사람이다. 아내와 연애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다.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은 볼 수 없어도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환한 세상은 영원히 사라졌지만, 그는 먹색 속에서 꿈을 꾸었고 꿈꾼 것 이상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인생은 모험의 연속이다. 아무도 미래를 모른다. 어느 날 신체의 일부가 사고나 질병으로 정지된다면 쉽게 받아들여질까. 누구나 온전한 삶을 원하지만, 그 삶은 모든 일상이 명백하게 유지될 때 가능하다. 보는 능력이 결여된, 밝음과 어둠의 경계를 넘어선 시각장애인이 된다면 나락으로 곤두박질을 쳐지는 극심한 고통이 한동안 동반될 터이다. 수묵화처럼 먹색으로만 그려지는 세상에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어 행동반경이 좁아진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까.

돋보기 안경이 필요해 안경원에서 시력검사를 했었다. 평소에도 좋은 시력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검사를 하던 안경사가 왼쪽 눈에 백내장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몇 년을 무심하게 그냥 지내다 지난 초봄에 안과에 갔다. 초기라 아직은 수술이 급하지 않다고 인공눈물과 안약만 처방해 준다. 그러던 것이 몇 달 사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초기였던 왼쪽 눈은 당장 수술이 필요하고 오른쪽 눈도 생겼다고 한다. 시력은 저하되어 흐릿하다.

생활 자체가 심드렁해진다. 백내장은 수술만 하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불안하다. 혹여 잘못되어 예사로 봐오던 모든 것들을 볼 수 없게 된다면 어찌할까. 걱정이 많아 말 수가 줄어든 요즘,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생긴다. 눈을 뜨고도 선명치 않던 것들이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보이고 진심과 사랑하는 것에 대한 간절한 기원과 뜨거워지는 마음이다.

숨을 죽이며 아파하는 것들은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발돋움하려는 오늘이기 때문이다. 먹색 속에서 꿈꾼 것을 이룬 멋진 남자의 노래를 듣는다.

“Time To say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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