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열네 분의 딸입니다
난 열네 분의 딸입니다
  • 문정옥 충북북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
  • 승인 2018.08.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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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문정옥 충북북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
문정옥 충북북부보훈지청 보훈섬김이

 

아침부터 푹푹 찌는 삼복더위다.

오늘은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과 시원한 계곡으로 피서를 나왔다. 시원한 물소리와 지인들의 웃음소리가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줄기 만큼이나 시원하고 상쾌하다.

지금 시간 오전 11시. 우리 어르신들은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와 씨름을 하고 계시겠지....

내가 처음 보훈청에 입사한 건 작년 11월 1일. 이제 8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이 일을 하기 전까지는 정말 여름엔 에어컨 빵빵 터지고, 겨울엔 따뜻한 온풍기를 맘껏 사용할 수 있고, 할 일 적당히 있는 편한 공장 사무실에서 4~5년을 근무했다. 어느 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그 힘든 일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 자격증 공부를 하느냐고 반대도 심했지만 편한 사무실 일에 재미도, 보람도 못 느끼던 나는 공부를 시작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 집에서 가까운 요양시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쯤 나는 방송통신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여성방범대에서 여성안심귀가서비스 봉사도 하고 있었으며, 특히 요양시설에서 힘든 근무까지 하느라 몸이 지쳐 있었다. 학교공부는 주말을 이용해 출석수업과 시험을 치르기에 요양시설에서의 근무는 포기하고, 바로 보훈청에서 보훈섬김이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입사하게 되었다.

보훈섬김이 일을 시작하면서 12명의 어르신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14명의 어르신을 섬기고 있다. 어르신들을 보살피다 보면 정말 다양한 성격과 개성들을 가지고 계셔서 어르신들을 파악하고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떤 분은 아들만 있어서 딸처럼 편하게 얘기할 사람이 없었는데 이런저런 살아온 세월과 고단한 삶을 들어줄 사람이 생겨서 너무 좋으시다는 분, 또 어떤 분은 불의를 참지 못하시고 따지시기를 좋아하시는 분, 몸이 약하셔서 무거운 짐을 많이 옮겨 달라 하시는 어르신은 매번 “우리 집처럼 힘든 집은 없죠?” 하시며 일을 시키시면서 너무 미안해하시는 어르신, 매번 갈 때마다 아들·딸이 오는 거보다 훨씬 반갑다며 맞아주시는 어르신 등 대부분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으시다.

가끔은 당신의 얘기가 옳다고 주장하실 땐 난감할 때도 있는데, 복지사님이 어르신들 얘기가 틀리더라도 많이 들어주시라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나서 경청해 드리다 보니 어르신들도 나에게 편안함을 느끼셨는지 더 빨리 친밀감이 생겨서 이젠 정말 내 가족처럼 편안해졌다.

나의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도 같은 동연배시다. 시아버님도 6.25참전 유공자이시다 보니 섬기는 어르신들이 내 부모 같다.

아직은 어르신들을 대할 때 다소 서툰 점도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눈빛과 편안한 목소리로 진심을 다해서 대하면 어르신들도 나를 딸처럼 편하게 생각해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가족처럼 편해지는 날까지 노력하고 난 현재 나의 일이 자랑스럽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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