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기 전에
여름이 가기 전에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8.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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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어느덧 8월입니다. 아니 닷새 후면 가을이 시작된다는 입추입니다. 맹위를 떨친 살인 더위도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말복더위가 남아 있고 막바지 더위도 기승을 부릴 테니 안심은 금물입니다. 폭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까요.

그래요. 정말 올여름 더위는 민초들이 살기 버거울 정도로 혹독했습니다. 예년처럼 장마도 없었고, 태풍마저 비켜가서 이글거리는 태양에 속수무책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여 낮에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 생업에 지장을 받았고, 밤에는 열대야에 단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방방곡곡에서 온열환자가 속출했고, 더위에 쓰러져 비명횡사한 노동자와 노약자들이 30여 명에 이르니 천재지변이 분명합니다. 저희 집에 세 들어 사는 베트남 주부가, 적도 지역에서 살다 온 아프리카인이 한국 더위가 그곳 더위보다 견디기 힘들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이니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피서(避暑)와 휴식이 필요한 때입니다. 일에 지친 샐러리맨에게, 일상에 지친 주부에게 필요한 처방입니다. 그래서 일정한 기간 쉬는 바캉스(vacance)라는 여름휴가 제도가 정착되었습니다.

피서는 여름철에 더위를 피하여 시원하게 지내는 일을 이르고, 바캉스는 학교와 공공기관과 회사들이 학생들이나 직원들에게 주는 여름철 휴가를 이릅니다. 기온이 상승하여 무더위에 시달리면 식욕이 떨어져서 영양실조를 일으키고 잔병이 생기며 기력이 쇠약하게 되어 질병에 걸리기 쉽기에 여름을 잘 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더위를 피하여 덥지 않게 지내려는 노력을 해왔고, 오랜 생활경험을 통하여 저마다 피서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늘을 찾아 쉬는 겁니다. 나무가 무성하여 녹음이 짙은 곳, 그늘지고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책도 읽고 천렵도 하면서.

더위를 먹지 않도록 기원하는 더위를 파는(賣暑) 세시풍습이 정초에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서로 이름을 불러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게'하고 외쳐서 자신에게 올 더위를 파는 일종의 주술적 행위였죠. 그러면 그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지낼 수가 있다고 믿을 만큼 민초들에겐 더위 먹는 게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바캉스는 불어이고 프랑스에서 시작된 휴가문화입니다. 1936년 5월 노동절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5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자 이에 분개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해 파업을 하게 되었고, 이에 동조하는 파업이 들불처럼 번지자 결국 자본가 대표는 두 손을 들었고, 대통령의 중재로 프랑스노동총연맹(CGT)과 마띠뇽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협정에는 주 40시간 노동, 1년에 2주일 유급휴가, 단체교섭, 임금인상 등 획기적인 내용이 포함됩니다. 이때 명문화된 프랑스 노동자의 유급휴가가 바로 바캉스입니다.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이룩한 역사적 산물이자, 휴가의 만국공통어가 되었지요.

바캉스의 진정한 의미는 `자유롭다', `텅 비어있다'입니다. 타이트한 일상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이자,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도심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캉스는 현대인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의 바로미터입니다.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때가 되면 만사 제쳐놓고 바캉스를 떠나는 프랑스인들이 부러운 이유입니다.

휴가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땐/ 산으로 올라가 소릴 한 번 질러봐/ 나처럼 이렇게 가슴을 펴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 땐 나처럼 노랠 불러봐/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클론(강원래·구준엽)이 부른 `꿍따리 샤바라'노래가사처럼 가슴 쭉 펴고 신나게 휴가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신나야 우리도 신나고, 우리가 신나면 공동체도 신날테니.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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