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소나기
마른 소나기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8.07.3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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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장마가 끝났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바쁘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한낮의 하늘도 나무들에 푸른빛을 더해주면서 점점 높아만 가고 있다. 사방을 둘러볼수록 무르익는 여름 풍경들이 가깝기만 하다. 간간이 닦아야 할 땀방울도 시간이 허락하는 귀한 선물이리라 생각하니 모두가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펼쳐지는 여름의 서곡들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중에 하나를 들라 하면 매미들의 합창이다.

어떤 이는 매미가 운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노랫소리로 단정하고 싶다. 가만히 귀 기울여 소리 속으로 빠져 들어가서 음의 높낮이까지 헤아려 본다. 그리고 특이한 점을 발견해냈다. 어찌 그리 한목소리로 시작과 끝이 균형 있는지 가히 놀랄만하다. 누가 지휘하는지 모르지만 정교한 음으로 마감을 하기까지 한다. 신기해서 한참을 나무 아래 서 있어야 했다.

갑자기 저 소리가 내 마음에 소나기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아득한 옛날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의 소리가 된 것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젖은 소나기 못지않게 온몸과 마음을 적셔주고 있었다. 매미소리에서 묻어나는 알 수 없는 그리움, 나는 지금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여름날의 한가운데를 휘 젖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친구들이 떠오른다. 순한 물결처럼 이 골목 저 골목 흐르며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모습들이다. 모든 자연이 또 다른 친구가 되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꿈을 먹고 마시며 자라나는 중이었다. 회상할수록 그때는 순수의 시절이기도 했다. 이제는 돌아가기 힘든 아득한 길, 그래도 마음 한구석을 비워두며 꿈에서나마 찾아가고 싶어 애를 쓴다.

가끔씩 꿈은 현실로 돌아오기도 한다. 통신이 발달한 오늘날 이렇게 소통이 급속해 질 줄을 미처 몰랐다. 작은 휴대폰 속에서 수많은 정보를 얻고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러던 중, 초등학교 친구들이 휴대폰 속에서 모두 모이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단체로 드나들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곁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갖는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때로는 실감 나지 않을 만큼 약간은 어리둥절하다.

대화 방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을 한다. 그래서인지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잘 통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만남이 마음 한복판에 흠뻑 쏟아지는 소나기가 아닐까 싶다. 잠재해 있던 그리움을 털어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니 하루가 가벼운 느낌이다.

그 후로 휴대폰에서는 정해진 시간에만 대화방의 문이 열렸다가 닫힌다. 나이만큼 귀들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 옷이 젖지 않는 소나기, 나는 요즘 마른 소나기를 한껏 맞으며 지내고 있다. 시대의 변천이 또 다른 몫의 우정을 키워주었다고나 할까. 그리운 이들과의 소통, 그것은 새로운 활력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지만 순수에 젖어드는 기분을 맛본다. 문명이 몰고 온 변화를 나는 오늘도 충분히 즐기는 중이다. 마른 소나기 쏟아지는 대화의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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