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존재의 이유
선택, 존재의 이유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7.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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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생이고 단짝이다. 학교가 끝나고 두 사람이 교문을 나섰다. 그들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파티에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부흥회에 가는 것이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한 친구는 파티에 가고 한 친구는 부흥회에 갔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파티에 간 친구는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빠졌고 결국 마지막에는 강도가 되었다. 부흥회에 갔던 친구는 부흥강사의 설교에 감동을 받아 열심히 공부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30년 전 갈림길에서 이루어진 순간의 선택이 한 사람은 백악관에 한 사람은 교도소에 있게 만든 것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실화라고 소개하지만 나는 실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화는 아닐지 몰라도 전혀 불가능한 일 또한 아니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그보다 더 극적인 일들을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미래는 가능성이다. 가능성은 그것이 무엇이건 제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무한하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미래다. 내일이라는 당신의 미래도 하나가 아니다. 수많은 당신의 내일이 있다. 하지만 과거는 다르다. 과거는 역사다. 역사는 선택된 미래다. 수없이 많은 당신의 내일 중의 하나가 선택되어 오늘이 되고 과거가 된다. 과거는 선택되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뿐이다. 선택되어 버렸기에 과거는 바꿀 수도 없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미래가 현재로 현재가 과거로 변한다는 것을 말한다. 시간은 수없이 많은 미래 중의 하나를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에 의해서 수없이 많던 미래 중의 하나만 선택이 된다. 이것이 미래가 과거로 변하는 의미다. 시간은 미래를 죽이는 킬러다. 다 죽이지는 않고 단 한 개만 남겨 놓는다. 딱, 한 개만 말이다. 그렇게 한 개만 남겨진 것이 과거이고 역사이고 인생이다.

인생에서 미래는 가능성이자 꿈이다.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나의 꿈들을 살해해 왔던가? 꿈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수많은 꿈을 살해하고 한 개만 남겨 놓은 일이다. 이렇게 보면 인생은 결국 꿈을 살해하는 여정이 아니던가?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이라면 과거는 결정된 결과다. 미래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중첩된 상태와 유사하다. 양자역학적으로 보면 미래는 다양한 상태가 중첩되어 공존하는 상태이고 현재는 그 중첩된 상태 중에서 선택된 유일한 한 개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과거는 이렇게 수많은 미래 중에서 유일하게 선택된 것의 기록 또는 기억이다.

양자역학적으로 미래는 관측되지 않은 상태이고, 과거는 관측된 기록이다. 여기 전자가 하나 있다고 하자. 이 전자를 관측하기 전에, 이 전자는 이 우주 어디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관측을 하게 되면 이 전자는 한 곳에만 존재한다. 우주 어디에나 존재하는 전자는 관측되지 않은 존재확률일 뿐이다. 그것은 전자의 미래다. 미래이기 때문에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측을 하게 되면 전자는 어느 한 곳에만 존재한다. 수없이 많은 미래가 시간에 의해서 하나로 선택이 되듯이, 전자는 관측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수없이 많은 전자가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관찰이라는 행위는 시간이 그러하듯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살해하고 하나만 선택하는 행위이다.

오늘이 되기 전에는 수없이 많은 내일이 있듯이 관측을 하기 전에는 수없이 많은 전자가 있었다. 오늘이 되면 그 많던 내일은 오직 하나만 선택되듯이 관측을 하게 되면 그 많던 전자들은 오직 하나만 존재하게 된다. 시간이 수많은 내일을 살해하고 하나의 오늘을 탄생시키듯이 관측은 수많은 가능성을 살해하는 잔인한 존재적 선택이다. 매 순간 우리는 선택을 한다. 이 선택의 결과가 밤하늘에 반짝이는 저 수많은 별이 되고, 우주가 되고, 오늘의 내가 된 것이다. 선택, 그것은 모든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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