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 나에게
난 오늘 나에게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8.07.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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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한의원에 오기까지는 엄청난 양의 파스 신세를 졌다. 어깨가 아픈지 오래다. 직업병으로 생각하며 다들 달고 사는 통증으로 여겼다. 아픈 증세가 목을 타고 머리까지 올라와 두통까지 나를 괴롭힌다. 여기서 버티지 못하고 항복이다. 이제 이제는 나를 봐주질 않을 모양이다. 파스로 견딜 수가 없는 한계가 온 것이다.

어제는 퇴근해온 그이의 손에 비닐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그 안에는 파스와 약이 들어 있다. 요즘 들어 그이의 몸 여기저기에 파스가 늘어가는 중이다. 청소업을 하여 고단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시큰해왔다. 나도 파스가 넓게 메우고 있었다. 아픈 곳이 낫는 것도 아닌데 진통이 덜하니 붙이는 것이었다. 서로 등에 파스를 붙여주며 동갑인 우리는 나이 들어가는 걸 실감했었다. 이렇게 서로 어루만져주며 깊어가는 중년을 위로했었다.

자고 일어난 내 몸이 천근이다. 뼈들이 쑤셔대고 머리를 짓누르는 통증은 파스로도 소용이 없다.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할 지경에 와서야 병원을 찾는다. 내가 이토록 미련하다. 진작 치료를 했다면 이렇게 심하지 않았을 일이다.

퇴근을 하고 서둘러 온 길이다. 진료를 받기에는 빠듯한 시간이어서 간호사의 눈치를 살핀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 말고도 환자가 여럿이라 안심을 하게 된다.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다. 여기저기서 실신음소리가 들려 순서를 기다리는 나를 더 겁먹게 한다. 공포다.

수십 개의 침이 꽂힌다. 바늘로 찌르는 이 느낌이 무섭다. 내가 여간해서 한의원에 오지 않는 이유다. 다른 선택이 없는 고행임을 알기에 눈을 감고 꾹 참는다. 침이 빠져나간 자리에 또 부황을 뜬다. 부황 컵을 잠시 붙이고 뗀 후의 사혈은 침을 맞을 때처럼 따끔따끔하다. 이 또한 나에게는 두려움이다. 긴장의 시간이 흘러가고 이제 오늘의 치료는 끝이 났다. 목을 타고 올라오던 두통이 좀 진정이 되었다. 침에 기운을 다 빼앗긴 듯 몸이 후들거린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기간의 고역을 잘 견뎌내야 한다. 조금 괜찮아졌다고 다시 파스가 유혹할지도 모른다. 느슨해진 내가 꼬임에 넘어갈지도 모르니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다. 시작한 일은 끝을 맺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 몸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온다. 어느새 이만큼 나이 먹은 게 섧고 뾰족하게 해 놓은 것이 없어 서럽다. 정신없이 시간은 흘러 중년에 와 있고 몸은 한군데씩 고장이 나기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곰 같은 주인을 만나 몸이 고생한다.

집에 오자마자 쉴 요량으로 집안일을 다 재껴두고 씻고 나왔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다가 눈에 선명하게 도장자국이 들어온다. 등에 하마 입만 한 불긋한 동그라미가 찍혀있다. 부황을 뜬 흔적이다. 보기에 흉하다. 남은 상처는 무엇이건 꽃이 진 자리에 말라가는 송아리나,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 남는 미련도 마찬가지다.

얼굴에 로션을 바르다가 화장대위에 놓여 있는 약을 담아온 비닐봉지가 보인다. 거기에는 피로회복제의 카피가 적혀 있다. 글귀와 마주한 순간 거울 속의 나와 마주친다. 오늘따라 마른 체구가 짠하다. 저체중으로 사는 나로서는 조금만 일을 해도 지치고 힘들어했다. 늘 피곤하여 워킹 맘으로 산다는 게 힘에 부쳤다. 26년을 한 직장에 잘 다니는 나의 몸이 대견하다.

“난 오늘 나에게 박카스를 사줬습니다.” 무심히 보아 넘긴 카피가 봇물처럼 와 닿는다. 질긴 갱년기와 씨름하고 있는 나를 위로하고 싶다. 지금까지 잘 살았다, 장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난 오늘 나에게 쓰담쓰담을 해줬습니다.”

“난 오늘 나에게 토닥토닥을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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