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부모였구나!
나도 부모였구나!
  •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8.07.25 2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친정집에 가면 자그마한 내 사진 하나가 있다. 짧은 커트 머리에 한복을 입고 있는 나는 지금 보니 촌스럽기 그지없다. 그래도 친정엄마는 예쁘다며 거실벽에 걸어 두셨다. 그 사진은 고등학교 시절 생활관 실습 날 예절교육을 받고 그동안 배운 예절을 보여드리기 위해 부모님께서 오셨을 때 다도 하는 모습과 큰절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그 당시 마지막 행사로 `부모님의 은혜' 노래를 부르는 데 눈물이 났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울컥했던 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엄마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하는 것은 왜일까? 지천명의 나이에도 친정엄마 앞에선 난 늘 어린 막내딸인 것 같다.

아들이 군대 가던 날이 기억에 남는다. 훈련소에 데려다 주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나섰다. 아들 친구 녀석들이 넷이나 따라가서 차가 꽉 찼다. 친구 군대 간다고 만사 다 제쳐놓고 따라나서 주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라서 그런지 나들이라도 가는 듯 즐거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군대 가는 거 맞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논산훈련소가 가까워지니 기분이 묘했다. 일찍 출발해서 시간 여유가 있었다. 11시쯤 이른 점심을 먹고 부대 안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부대 안에는 일찍 온 훈련병과 가족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노래자랑을 하면 일회용 전화 이용권을 준다는 말에 앞으로 나선다. 생전 가족 앞에서 노래 부르지도 않던 아들이 전화 이용권에 용기를 냈다. 그때까지 아들의 표정은 밝고 신나 있었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지니 훈련병들의 집합 방송이 나오고 연병장 안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아들과 헤어질 시간이 가까웠다. 순간 가슴이 찡하고 울컥했다. 2000여명의 훈련병 속에 묻혀 있는 아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입소식은 20분 정도로 짧게 끝났다. 마지막으로 연병장을 도는 훈련병들 가운데 아들을 찾느라 기린 목이 될 정도였다.

거의 마지막 순간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들은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방금까지 만 해도 나들이 나온 아이처럼 신났던 아들은 잔뜩 겁먹은 표정을 뒤로하고 멀어져 갔다. 돌아오는 내내 가족들은 아무 말 없이 차창 밖만 바라보았다. 그날 밤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렸다. 모든 부모가 자식 걱정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들이 군대 간 이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날씨가 더워도 아들 생각, 비가와도 아들 생각, 자다가도 문뜩 깨면 아들 생각이 먼저 난다. 모든 일을 아들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들 군대 갔지? 기분이 어때? 많이 울었어?” 난 그저 미소만 지었다. 이젠 아들이란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울컥하여 대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했던 내가 이젠 아들 소리만 들어도 울컥하는 것을 보고 `나도 부모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사랑을 나 역시 몰랐다. 친정엄마 앞에선 아직도 철부지 막내딸이지만 군대 간 아들 앞에선 나도 부모였다.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오늘 같이 폭염이 기승을 부리거나 비가오는 궂은 날에는 자식 생각이 더 나는 걸 보니 나도 어느새 부모가 되어 있었나 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