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항순례
누항순례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7.2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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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논어'에는`누항'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좁고 더러운 골목이라는 이야기다. 공자가 아끼던 제자 안회(顔回)의 삶을 상징한다. 공자의 말을 들어보자.

“한 광주리 먹을거리에 한 바가지 마실 거리로 더러운 골목에서 살면 남들은 그 걱정을 견디지 못하는데, 우리 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구나, 우리 회는.”(一簞食, 一瓢飮, 在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 賢哉回也. `옹야(雍也)')

가난한 안회를 걱정했더니, 오히려 그런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는 모습이다. 이른바 `안빈낙도'(安貧道)의 정신이다. 가난함에 편안해하면서 옳음을 좇는다는. 여기서 말하는 `도'(道)가 옮음뿐이겠는가? 그것은 `스스로 걷던 길을 가는 것'이다. 자기의 가치, 생활의 방식, 삶의 여정, 이루어진 관계들을 어떤 이득이나 유혹에 휩쓸리지 말고 지키자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자는 거창한 이야기는 필요도 없다. 그런 말은 추상화되어 개나 소나 다 떠들 수 있다. 그러나 `한 광주리와 한 바가지'는 아무나 못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을 광주리에 담아 쉬는 것을 더디 했다.

물을 떠먹을 마땅한 도구가 없을 때(이른바 `cup'이 없을 때) 바가지는 물을 담을 수 있는 대표적인 물건이었다. 광주리에 보리밥과 푸성귀가 쌓여 있고, 그 옆에 한 바가지 물이 떠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푸성귀 한 잎에는 된장이라도 떠져 있으면 좋겠다.

이런 정신을 예전 사람들을 원어 그대로 `일단사, 일표음'(一簞食, 一瓢飮)으로 정식화했다. 이때 먹을 `식'을 `사'로 읽는 것은 `먹다'가 아니라 `먹이다'라는 능동이 아닌 사역을 말할 때 그렇게 읽는데, 여기서는 `그렇게 먹고살 수밖에 없다'는 뜻을 담는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며 살려진다는 이야기다. `단사표음'이라는 4자 성어의 유래다.

중국의 북경에는 누항이 정말 많았다. 개혁개방 초기에는 그것을 없애기 위해 중국정부에서 기를 쓰더니, 이제는 그것을 관광 상품으로 세계화시키고 있다. 발생의 전환이다. 북경의 도시주택은 네모반듯하게 짜여진 사합원(四合院)이었고, 그 골목을 호동(胡同, 후통)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서울 도심의 주택이 네모꼴인 것과 같고, 종로의 피맛골처럼 대로가 아닌 골목이 발달하는 것과 같다. 이제는 북경골목여행이라는 책자가 나올 지경이다.

사람이 사는 풍경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과거의 그런 구질구질함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통영에 동피랑 골목이 뜨더니 소설가 박경리를 주제로 서피랑도 개발했다. 골목길에 그림 그리는 것으로는 형식적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겠지만, 그 골목에 살던 사람들을 `문학적'이거나 `소설적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부산의 감천마을도 피난민들의 애환 어린 먹고살기 힘든 동네였는데, 이제는 비슷한 영도의 바닷가 골목도 관광지로 개발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나오면서 그런 곳이 뜨기도 했다. 대구에는 `진골목' 곧 긴골목이 있다.

서울의 좁은 골목이 대표적인 관광지가 된 곳이 인사동이다. 외국인들이 오면 꼭 찾는 음식점, 찻집, 기념품 거리가 되었다. 그러자 청와대 옆 국무총리공관 근처의 북촌이 카페 촌으로 부상했다. 이제는 종로구 익선동의 늙고 쓸쓸하던 골목이 개발되며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작은 여관도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한옥마을인 익선동, 그 이름을 흉내 내보자. 골목, 요리조리, 꼬질꼬질, 그리고 삶의 꾀죄죄함, 이제 다닥다닥 이야말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충북대 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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