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과 광장
노회찬과 광장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7.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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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노회찬이 죽었다. 그 한 사람의 죽음이 세상을 달라지게 할 것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절대로.

스스로 멈추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앞으로 나아가길 희망하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다. 아니 어쩌면 목숨 걸고 간절하게 갈구하는 절대적 시대 변화의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명이 끊어졌고, 그 단절은 우리가 그토록 바로서기를 원했던 역사의 머뭇거림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 맹렬한 여름에, 동해안 강릉은 무려 111년 만에 가장 뜨거웠다는 역사에 노회찬, 그 한 사람의 죽음은 우리를 통탄스럽게 하고 문득문득 세상을 원망하며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괴로움의 깊이를 더 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거나 `부끄러운 판단'에 대한 `책임'이, 차라리 깨끗하고 공정한 세상을 향한 마지막 양심이고 돌이킬 수 없는 뉘우침으로 작동해 아직도 모질게 남아 있는 이 땅의 인간들에게 경종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생명을 내던진 그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의 죽음을 조롱하는 무리들과 뒤섞여 살고 있는 세상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유일한 직속기구이며 국가의 안위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책임져야 하는 국가정보원을 방문한 대통령의 영상에서 유난히 경계와 주의에 집중했던 대통령 경호요원의 모습을 찾아낸 것은 나의 지나친 과민인 것으로 믿고 싶다. 계엄령을 통해 국민을 때려잡으려는 독재적 발상을 저지른 국군기무사(이러한 행위를 저지른 집단에게 `국군' 즉 국민의 군대라는 호칭을 붙여야 하는가)를 보면서 촛불 혁명에도 불구하고 바뀐 것은 기무사 사령관뿐이라는 탄식을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가.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살인 더위에 통학버스 차 안에 어린이를 방치해 목숨을 잃게 하거나, 11개월 된 아기에게 이불을 덮어씌워 숨지게 하는 어른, 아니 그런 인간들과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이 힘든 것은 절대 무더위 탓이 아니다.

그런 탄식에 까닭 없이 이런 시가 떠오른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시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 광야>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세상을,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노회찬의 죽음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 말 뿐인가.

`광장'의 기억도, 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당선됐다는 솔직함도 흐릿해지고 있는데, 어쩌다 `광장'도 아닌 `광야'를 떠올리며, 세상에 무엇을 기약하거나 희망할 수 있을 것인가.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 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중략)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산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 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최인훈. 광장의 서문에서> `중립의 초례청'에서 부끄러움을 빛내며 맞절하던 `아사달'과 `아사녀'처럼 노회찬도 아깝고, 소설가 최인훈의 작고도 서로 닮아 어쩌지 못할 만큼 이 뜨거운 여름을 애잔하게 한다.

`광장'의 이명훈처럼 중립을 택할 용기도, 보수와 진보라는 허울에 갇혀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대립과 조롱에서 헤어날 수 있는 날들의 역사와 세상은 죽음과 맞바꾼 부끄러움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라는 급격한 문화의 변화가 (개인의)경제적 변화에 맥 못 추는 최저임금의 시대, 노회찬은 `광장' 너머 `광야'로 갔다.

돈은 혼 줄을 놓게 하고, 을은 을끼리 서로에게 함부로 부대끼고 있을 뿐, 가진 자들은 여전히 끄떡없는 시대. `정의'가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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