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족이고 싶다
욜로족이고 싶다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8.07.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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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아주 오랜만에 산사에 오른다. 축축 늘어진 잡초는 흔들바람에 몸을 맡기고, 군데군데 움푹 파인 비포장도로는 소달구지 타듯 터덜거리는 흙길은 과거로 뒷걸음치게 한다. 산사 가까이 겨우 주차를 하고 오솔길에 올랐다. 얼핏 보아도 팔순을 바라보는 함초롬한 할머니, 자그마한 등짐엔 공양할 쌀을 지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길섶에 주저앉아 연신 땀을 훔친다. 우리 일행은 배낭 위에 노인의 공양미를 올려놓고 할머니와 산사에 도착했다. 은빛 머리카락 사이로 번들번들 빛나는 땀 구슬은 이마를 타고 목선에 작은 선을 그리며 젖무덤을 파고들고, 할머니의 작은 가제손수건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바람도 쉬어가는 산모롱이에 작은 금당과 누각이 퇴색된 채 세월을 켜 안고 있다. 그림조차 희끗희끗한 단청이 할머니의 팔뚝에 자잘한 검버섯처럼 얼룩져 있고, 법당문의 화려하게 조각된 연꽃문양은 세월의 흔적만큼 그 또한 할머니 머리카락처럼 퇴색되어 허옇게 빛바래 있다. 퇴화한 날개 같아 괜스레 애잔하다.

법당으로 들어섰다. 이마를 땅에 대고 양손은 소원을 떠받아 귀 위까지 올리며 연신 치성을 비는 할머니, 한 송이 금낭화 같은 치마폭에 삶의 방울이 뚝뚝 떨어져 얼룩이 진다. “할머니, 아직도 치성 드릴 일이 남으셨나요?” “복을 달라고 빌지” “복이라뇨?” “자리 보존하지 말고 자다가 영감 옆으로 가는 게 복이지.” 침묵이 흐르고 허공에 머물던 시선은 할아버지 위패를 쫓더니 할머니의 눈언저리가 촉촉해진다. 가늘게 새어 나오는 긴 한숨은 처마 끝 풍경에 매달린 듯하다. 대문 밖이 저승길이라는 할머니, 평화로운 죽음이 복이라며 오로지 그 한 가지만 염원한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을 비운 할머니 수레는 빈 수레일까? 인간의 욕망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고 했는데, 죽음을 앞둔 노인들의 삶에 대한 집착은 세상을 다 주고도 한 줌 더 얹혀준다 했는데, 외려 세월의 무게가 공수래공수거로 만들어 놓았을까.

오만가지 근심을 끌어안고 그저 잘되기만을 빌었던 내 모습을 되돌려보니 비우고 버린 것보다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할머니와 나는 한곳에서 두 손 모아 빌고 있음에도 너무나 다른 염원이었다. 부와 명예, 자식의 출세에 눈이 멀어 늘 무릎 꿇고 기원했다. 세상의 불만을 토로하고 욕심만을 채우려 한 나의 모습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 같아 낯빛이 뜨거워진다. 과연 나는 훗날 빈 수레로 떠날 수 있을까. 물안개처럼 퍼지는 법당의 향내는 지나온 향기를 묻어두고 사람의 향기를 끌어올리는 듯 잔잔하게 내려앉는다.

기울어지는 햇살, 홈질하듯 촘촘한 발걸음으로 할머닌 평온한 듯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사찰을 떠나신다. 자못 정정하시지만, 대문 밖이 저승길이라며 마음의 봇짐을 풀어놓고 가신 할머니, 먼발치 가물거리며 치맛자락이 얼핏 보였다 사라진다.

문명의 발전 때문일까, 핵가족화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여유를 누리는 욜로족이 많아지고 있다. 노년의 설계보다는 `한번뿐인 인생을 즐겁게 살자'는 욜로족이 확산되고 있는 요즘이다.

이제껏 밟아온 길을 뒤돌아보니 하얀 백지 위에 수없이 그린 밑그림을 완성시키는 단계에 서 있다. 젊은 날의 화려함보다는 평온함을 채색하고 싶다. 한 올 한 올, 한 땀 한 땀을 꿰매 옷이 완성되고 몸에 딱 맞는 것처럼. 풍파가 없는 바다, 거센 바람이 없는 들녘, 굴곡이 없는 인생 길목 평탄하고 밋밋하다면 삶의 도전조차 없을 터. 한 올 한 땀 바느질하듯 세월을 수놓는 마음 언저리에 유독 할머니 모습이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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