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라는 존재
에너지라는 존재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7.1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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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에너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학자이건 시인이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건 아니건 말이다. 우리는 매일 에너지를 사용하고, 에너지를 사고팔고, 에너지 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 에너지는 어떤 때는 석유이고, 어떤 때는 전기이고, 어떤 때는 열과 빛이기도 하다.

에너지는 없는 곳이 없다. 우리가 먹는 음식 속에도 있고, 따뜻한 찻잔 속에도 있고, 내리쬐는 햇살 속에도 있고, 사랑하는 애인의 체온 속에도 있다. 에너지는 흘러간다. 에너지는 전깃줄을 타고도 흘러가고, 전파를 타고도 흘러가고, 바람을 타고도 흘러가고, 파도를 타고도 흘러간다.

그런데 막상, “에너지가 뭡니까?”라고 물으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과학자에게 물어도 에너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에너지가 무엇인지 답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울까? 그것은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내가 매달 에너지에 내는 돈이 얼마인데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기세, 난방비, 연료비 등 모두 에너지 때문에 내는 돈이 아닌가? 맞다. 에너지가 없다니 그건 말이 안 된다. 에너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에너지가 존재한다'고 할 때의 그 존재와,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때의 그 존재가 같은 존재가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그 존재는 보이고 만져지는 그런 존재를 말한다. 물론 본다는 것도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관측 장비를 동원해서 측정하는 행위를 말하며, 만져진다는 것도 인간의 감각만이 아니라 모든 감지기(센서)를 동원하여 감지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공기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바람이 불면 먼지가 날고 태풍이 불면 지붕이 날아간다. 따라서 공기는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영혼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관측 장비나 어떤 센서로도 영혼을 감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영혼이야 그렇지만 에너지는 전기나 가스 메타로도 측정하고, 온도계로도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메타로 측정하는 것은 사용한 가스의 양과 전기의 양을 측정하는 것이고 온도계는 공기분자들의 운동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지 에너지를 측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스나 전기가 에너지는 아니지 않은가? 에너지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현상을 설명하려고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 인생을 설명하려고 만들어낸 개념이 `영혼'이듯이 말이다.

에너지뿐만 아니라 과학책에 있는 모든 개념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질량, 힘, 중력, 에너지, 운동량 등 모든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현상을 설명하고자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 과학뿐만이 아니다. 영혼, 정신, 천당, 극락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돈의 가치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은행이 보증하지 않으면 돈은 그냥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돈이 가진 가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약속'일 뿐이다.

더 극단적으로 나가면 대한민국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과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지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인간들이 만들어낸 `개념'이고, `약속'일 뿐이다. 이 땅과 그 인간들이 없다면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고 존재하는 권재술이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땅에 사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대한민국은 권재술보다 더 중요하고, 권재술이 죽은 후에도 대한민국은 남아 있을 것이다. 권재술이라는 존재보다 대한민국은 더 확실하고 더 영속적인 존재가 아닌가?

에너지도 그와 같은 것이다. 에너지는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없이 볼 것은 아니다. 존재하지 않으면서 모든 존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권재술을 지배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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