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보수와 진보
진정한 보수와 진보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8.07.1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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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도, 사람만 살아가는 곳도 아니다. 식물 동물 등 모든 존재가 서로 얽히고설켜서 하나의 인드라 망을 이루고 살아가는 유기체적 공간이 바로 이 세상이다. 세상엔 개똥이도 있고, 소똥이도 있으며, 말똥이도 있다. 각자 각자가 자신의 인생관 및 가치관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까닭에, 개똥이는 개 소리를 내고, 소똥이는 소 소리를 내며, 말똥이는 말 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조금 더 극단적인 비유를 든다면, 개는 쉰내 나는 뼈다귀에 마음이 꽂히고 사람은 종이 쪼가리인 수표에 마음이 꽂힌다. 이처럼 서로 간의 삶의 방식이 같지 않고 상이하기 때문에 한 존재는 개고, 다른 한 존재는 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사람이 수표를 외면한 채 쉰내 나는 뼈다귀를 물고 달아나는 개를 욕하는 것이 옳다면, 개가 먹지도 못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인 수표를 놓고 다투는 사람을 욕하는 것 또한 그르지 않아야 한다.

개에겐 개의 세상과 개의 본분사가, 사람에겐 사람의 세상과 사람의 본분사가 있다. 개는 개로 살아오면서 축적된 개의 업식(業識)에 따라,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축적된 인간의 업식(業識)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컴퓨터가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입력된 정보들을 토대로 작동하고 반응하는 것과 같다. 실상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개를 무조건 틀렸다고 꾸짖고 부정하기만 하는 것은, 개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의 눈높이를 외면한 사람의 문제다.

개의 현주소를 직시하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을 개에게 강요하려고만 들면, 그동안 이어져 온 개와의 부분적 소통 및 유대관계마저 단절되고 만다. 개가 쉰내 나는 뼈다귀와 신선한 살코기 수십 톤을 살 수 있는 수표를 몰라본다는 이유로, 무조건 개를 비난하고 외면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개의 입장을 직시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뒤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개를 위해서 수표가 무엇인가를 잘 설명해 줘야 한다. 첫술에 배부른 일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는 애정을 가지고 설명하고 또 설명하면서 개의 업식이 녹기를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큰 사랑이 아니라면, 사람이 옳고 개가 그르다는 냉혹하고 단순무지한 이분법적 논리라면, 그 어떤 말로서 개를 설득하고 윽박지르며 협박을 해도 별 소용이 없다. 관계를 악화시킬 뿐, 함께 공생하며 공영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같은 관계의 미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진보적 성향의 사람과 보수적 성향의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올바른 진보와 보수라면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 상보적(相補的) 상의적(相依的)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상생(相生) 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적대시 하며 감정의 노예가 된 채, `내로남불'의 뒤틀린 마음으로 대립하고 반목한다면 이미 진보도 보수도 그 무엇도 아니다.

특히 국민을 대표하는 진보 보수를 자처한다면 더욱더 그렇다.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0점 조정된 중도의 마음으로, 어두컴컴하고 비좁은 각자의 우물을 벗어나 서로 두 손을 맞잡고 대한민국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또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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