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와 명품 몸매
아도르노와 명품 몸매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음성원남초 교장
  • 승인 2018.07.1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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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음성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음성원남초 교장

 

이 무더운 날, 필자가 다니는 헬스클럽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특히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해수욕장 갈 준비를 한다고들 한다. S라인, 식스팩 복근, 굴벅지 등 몸매에 대한 관심은 나이, 성별, 지위고하를 막론하는 것 같다. 세 번의 무릎수술로 늘 체중과의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필자 또한 그 중의 한 사람인지 모른다. 통계에 의하면 고등학생의 90%, 대학생의 95%가량이 외모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그 중 대다수가 자신은 뚱뚱하고 몸매에 자신이 없어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소위 명품 몸매와 몸짱에 목매고 있을까?

독일의 철학자, 비판이론의 1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인 아드르노(T. W Adorno)는 몸에 대한 일종의 광풍현상을 후기자본주의 인간 소외의 짙은 그늘로 본다. 그는 나 자신의 몸으로부터 나를 소외시키는 것은 이른바`문화자본'을 냉철하게 비판했다.

자본주의가 극에 달하면서`문화'는 `화폐'로 동일화 되어간다. 그래서 문화자본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거대한 문화자본이 만들어 낸 대표적인 것이 아이돌과 걸그룹이다. 이들 멤버들의 몸은 상품처럼 동일하다. 완벽한 S라인과 날씬한 몸매이다. 문화자본은 이러한 S라인, 식스팩복근 등의 몸은 누구나 노력하면 가질 수 있고 그러면 행복한 삶이 저절로 따라오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데 열을 올린다.

아도르노가 신랄히 비판한 대로 `대중문화'는 우리에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세계만을 강요해 의식의 획일화, 탈주체화, 비사고화를 유도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인간 스스로 자기 자신을 단순한 객체로 취급하는 사태, 삶의 고유성이 상실되고, 다른 것에 의해 언제든 환원될 수 있는 단순한 객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 인간 소외이다.

철학자 최준호는 자신의 지문을 보라고 한다. 자신과 똑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다. 지문만큼 자신의 고유성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처럼 몸은 각자의 고유성이 담긴 개성의 확실한 담지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자본, 혹은 문화산업에 의해 조장되는 몸은 몸에 담긴 이러한 의미를 거의 완벽하게 훼손해버린다.

아드르노는 `S라인, 식스팩, 꿀벅지' 등은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하는 몸일 수는 있으나 각자의 삶의 고유한 특성과는 거리가 먼 몸이라고 한다. 즉, 그것은 상품으로서의 몸일 뿐이다.

그럼 아드르노가 말하는 고유성을 지닌 주체적 `몸'은 어떤 것일까. 그는 철저하게 역사적인 몸을 강조한다. 노동하는 모습이 새겨진 몸이다. 노동하는 몸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각자의 일터에서 노동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몸의 기본 윤곽을 가진 사람은 삶의 기본윤곽이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의 출발로서의 몸은 자신의 노동하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아로새겨진 몸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삶의 조건에서 노동하는 역사적인 몸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몸은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다. 노동의 고통을 아로새긴 몸의 소유자와 소주 한잔 기울이며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몸짓에서 풍겨 나오는 에너지로 인해 치유의 힘을 느낀다는 것이다.

함께하는 직원들 사기 올리느라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고 지역사회 학부모 등과 연대하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어울려 막걸리 마시느라 두툼하게 나온 뱃살, 그을린 얼굴, 불어난 턱살. 이런 내 친구 박 교장의 몸매는 아드르노가 예찬하는 노동의 결과로 나온 몸이다. 나는 그 친구와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 힐링이 된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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