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셀 아담스
안셀 아담스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18.07.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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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를 말하다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사람은 어느 한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야 한다. 그러한 경험이 자신의 일에 반영될 수 있도록 그곳의 성격과 정신을 흡수해야 한다.”

70여년의 세월 동안 미국 요세미티국립공원과 관계를 맺은 것은 물론 사진작품 대부분을 이곳에서 찍은 사진가 안셀 아담스. 그는 190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업가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외롭고 독특한 어린 시절을 베이커비치에서 아메리칸 컨티넨트까지 거의 매일 등반했던 그는 12세가 되면서 독학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악보 읽는 법을 깨우쳤다.

1919년 시에라클럽에 가입한 그는 사진가로 시작하여 글과 사진으로 책을 출간하고 1928년 개인전도 열었다. 음악가였던 그가 점차 사진에 매력을 느끼면서 시에라 네바다에서 수년 동안 사진촬영을 하는 등 열정을 키우더니 사진을 카메라나 암실에서 조작하지 않고 정교한 스트레이트 사진을 추구했다. 다이내믹한 에너지로 단련된 그는 1932년 F64그룹에서 활동할 때 국가적인 이슈가 될 정도로 미국서부해안 사진으로 샌프란시스코 대영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는 천성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여 늘 사진여행을 즐겼다. 야생과 환경보호를 위해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강렬하면서도 순수한 감정으로 숭고하고 장엄한 작품 만들기에 두각을 나타냈다. 한때 그의 풍경 사진 속에 인물이나 인간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정한 야생환경 사진작업은 식을 줄을 몰랐다. 19세기 미국 풍경 사진에 낭만주의를 정착시킨 그는 자연을 `절제 속에서의 균형'으로 고집했다. 그는 사진 찍는 작업 외에 완벽한 인화 기술을 확립하려고 존 시스템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흑백사진의 색조, 섬세하고 미묘한 명암 대비가 되는 기술을 의미하는 존 시스템은 후세의 사진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존 0은 완전한 검점, 존 10은 완전한 흰색으로 그 범주에 따라 색조의 변화로 만족스러운 사진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그는 이와는 별도로 카메라에 풍경을 담는 작업에 큰 열정을 쏟았다. 1941년 10월 10일 아들 마이클 아담스와 친구 세드릭 라이트를 데리고 요세미티 남서쪽으로 사진여행을 갔을 때였다. 이 여행에서 찍은 사진의 제목이 `헤르난데스의 월출'이다.

장비 모두를 차에 싣고 캐니언 드 쉐이를 가는 길에 헤르난데스를 향할 무렵이었다. 멕시코 북부의 에스파놀라 고속도로에서 남쪽으로 달리던 중 싱그레 드 크리스토산맥에 있는 드루차스 피크 위로 달이 떠오르고, 지는 해는 교회묘지의 하얀 표식을 비추는 것을 보고 8X10 카메라를 설치했다. 해가 구름 뒤로 사라지기 직전이어서 일단 첫 촬영을 한 후 8X10 필름 홀더를 뒤집고 슬라이드 필름을 뺐다. 그는 더 찍지는 못했지만, 이 한 장으로 생애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암실에서 수천 장의 사진을 만들어 팔았다.

수십 년 동안 환영과 찬사를 한몸에 받은 이 사진으로 책, 달력, 포스터, 잡지, 신문, 교과서에 실리는 기쁨을 맛보았다. 1979년 타임지의 커버스토리로 실린 예술평론가 로버트 휴즈와의 인터뷰에서 안셀 아담스는 예술적인 사진을 보고 음악을 들을 때 감상적이 아닌 구조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즉 그의 작품과 음악의 연관성이 서정적인 분위기로 꽃들과 풍성한 구성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는 거대하고 화려한 장면의 사진가로 알려졌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았으며, 한껏 부드러움이 스며 있었음에도 유의할 필요를 느낀다. 결국, 글과 사진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던 사진가이자, 평생 아름답고 복잡하며, 미묘한 경이로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환경보호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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