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난민
월드컵과 난민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7.1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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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20년 만에 프랑스를 세계 정상의 자리로 복귀시키면서 월드컵 잔치가 막을 내렸다.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인 집안에서 축구중계를 본다며 밤새도록 TV를 켜놔도 스스로에게 별다른 미안함이 없던 핑계도 사라진 셈이다.

TV는, 그리고 세계인을 열광하게 하는 스포츠 빅 이벤트는 사람을 참 단순하게 한다. 시차가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탓에 일상과 맞지 않아도, 명색이 월드컵인데 중계를 보지 않으면 어쩐지 지구촌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야 그렇다 치자. TV를 보는 듯 마는 듯 밤잠을 설치는 바람에 다음 날 약간의 해롱거림에도 넉넉한 관용이 베풀어짐은 물론 축구 덕후끼리 만나게 될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간밤의 경기를 복기하는 패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럴 때면 세계의 고민은 깡그리 사라지고, 오로지 공 굴러가는 향방과 골문 안으로 공이 들어가는 결과에만 함몰된 채 심장과 오감이 작동하는 듯하다.

그러나 축구라는 게, 수십억 인류를 TV앞이거나 광장, 혹은 술집으로 이끄는 그 엄청난 재미가 사실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선수들 몸값이라는 극단의 자본주의가 있고, 상대팀에 따라 변화무쌍한 전략과 전술이 있으며, 행운도 뒤따라야 하는 우여곡절이 있다. 게다가 이번 러시아 월드컵부터는 기계장치(VAR)가 경기 결과를 좌우하는 경지도 선보이고 있으니, 말 그대로 현대 인류 생태계의 총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찌감치 프랑스의 우승을 예상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바람이었으나, 조별리그와 본선 토너먼트가 진행되면서 내 안의 기대와 희망이 확신으로 자라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는 20년 전인 199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 당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축구경기는 `아트사커'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세밀한 패스와 끈끈한 조직력을 특징으로 한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프랑스의 강한 자부심이 적용된 것이며, 국가의 우월성이 특히 강조됐던 1990년대의 시대조류가 반영된 것이다.

프랑스의 이번 러시아 월드컵 우승에는 그저 단순한 축구경기라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 여러 가지 당대를 상징하는 사회적 요소들이 있다.

각종 테러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이민과 난민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적 기류와 다인종, 다문화의 융합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 프랑스의 정체성은 가장 눈에 띠는 요소다.

우승팀 프랑스 축구대표선수는 엔트리 23명 가운데 무려 17명이 이민자 출신이다. 아프리카와 중동 등 상대적 제3세계 출신이 주축을 이룬 프랑스 축구의 승리는 `문화적 다양성'이 비결이다. 프랑스 축구는 대체로 볼 점유율 등 주도권을 행사하며 흐름상의 경기 주도권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만 튼튼한 수비를 바탕으로 사전에 충분한 연습을 통해 약속된 역습으로 골을 만들어 내며 승부를 결정짓는다. 난민과 테러 위협, 여전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침체의 경제 상황과 극우 정권의 수립이 잇따르고 있는 유럽 전체의 움츠림과 닮아 있다.

월드컵에 단순해지는 사이 예멘 난민들이 우리 땅 제주에 상륙했다. 전쟁에 패배한 희생의 제물이 되어 청나라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목숨을 걸고 돌아 온 동포들에게 조차 `환향녀'로 멸시하던 나라를 찾아 온 그들이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이민자 위주로 팀이 구성된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은 예맨 난민에 대한 한국민들의 생각과 결코 상관이 없다. 아직도 단일민족이라는 순혈주의에 대한 확증편향을 고칠 생각은 전혀 없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마다하면서 `내 것'을 빼앗길 수 있다는 섣부른 우려만 난무한다.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승리가 CNN의 표현처럼 “모든 이민자의 승리”로 인식 전환되는 일은 당장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긴 자만 우리 편'이라는 극단적 자본의 논리만 살아남을 것이다. 다만 피땀 흘려 승리를 가져단 준 선수들의 `호의'를 이방인들 모두에게 두루 `예의'로 되돌려주는 보편적 따뜻함을 바랄 뿐이다. 그게 사람이다.

축구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고,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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