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찾아온다
알아서 찾아온다
  • 이헌경 진천여중 사서교사
  • 승인 2018.07.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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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이헌경 진천여중 사서교사
이헌경 진천여중 사서교사

 

4살 위의 언니 따라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은 아직도 책장에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섬세하고 우아한 그녀만의 문장이 참 마음에 들었다. 지금의 진천여중 학생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또 일부 학생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읽기도 한다. 40대의 여선생님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이 책장에 없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속상한 일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우리는 나름의 스타일대로 일본 문학을 즐기고 있다.

그중에서도 난 일본 그림책을 좋아한다. 사토 와키코의`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하세가와 요시후미의 `내가 라면을 먹을 때', 야시마 타로의 `까마귀 소년'을 수업 시간에 토론용으로 많이 활용했다. 최근에는 오사다 히로시의 `첫 번째 질문'도 활용하고 있다. 그래도 일본 그림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이다.

하얀 표지에 앞다리를 들고 서 있는 고양이는 100만 번이나 살아서인지 당당함이 흐른다. 우리나라 옛이야기처럼 반복되는 사건 전개 구조로 읽어가는 재미가 좋다. 금수저의 고양이였다가 흙 수저의 고양이기도 했던 고양이의 이야기는 아이들도, 읽어주는 나도 늘 즐겁게 보는 작품이다.

그림책으로 만났던 사노 요코 작가를 요즘은 에세이로 만나고 있다.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아들이 뭐라고' 등 뭐라고 시리즈 전부를 읽지는 못했지만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코씨의 말 (사노요코 글, 기타무라 유카 그림/민음사/2018)'은 편안하게 읽었다. 그림이 어우러져 만화책을 읽는 기분이다. 차분한 색감 덕에 눈이 피로하지 않다. 한 권에 9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 읽기에 딱 좋다. 큰 울림보다는 나긋나긋하게 눈을 깜빡이며 공감하게 된다. 첫 번째 책의 소제목 `하하하, 내 마음이지' 딱 그대로이다.

`100만 번 산 고양이' 그림책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서서히 무너져 내린 가정을 꾸려 나가며, 나는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한 고양이가 한 암고양이를 만나 새끼를 만들고 이윽고 죽는다는 그런 단순한 이야기였다. `100만 번 산 고양이'이 이야기가 내 그림책 중에서 드물게 잘 팔렸다는 것은 인간이 그런 단순한 일을 소박하게 바라고 있기 때문인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런 단순한 일을 바라고 있다는 증거였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온전히 그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그녀와 동시대를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녀의 말을 통해서 그녀를 다시 그려 본다. 가만히 읽어내려 가다 나에게 선물 하고 싶은 문장을 발견했다. 그라인더 뚜껑을 열자마자 막 갈은 원두의 진한 향기처럼 훅 다가왔다.

`기분 전환은 내 스스로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알아서 찾아오는 거다. (중략) 또 다른 하찮은 뭔가가 알아서 찾아와 줄 테니 사이좋게 그 손을 잡고 꿋꿋하게 살아가야지.'

피곤하고 언짢은 기분은 스스로 조절해야 하는 줄 알았다. 지금껏 그래 왔고 그래야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이라 여겨왔다.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어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다, 괜찮다 해주었다. 한 번씩 혼자 훔치던 눈물과 꾹꾹 눌러 담았던 서운한 감정들.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편안해진다. 마치 엄마처럼 날 토닥여주는 것 같다. 알아서 찾아온다. 이 말을 믿고 싶다. 난 손 내밀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당신들도 손을 내밀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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