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선풍기
늙은 선풍기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8.07.16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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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안희자 수필가

 

7월의 여름 풍경은 눈을 두는 곳마다 초록 물결이다.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 후텁지근한 날씨에 몇 걸음만 떼어도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몸이 젖은 솜이불처럼 무겁다.

거실로 들어서자 재빠르게 선풍기를 틀었다. 순간 뚜둑! 외마디 소리와 함께 선풍기 목이 부러지고 말았다. 서둘러 두 동강 난 몸을 묶어 고정시켜 보지만 “그르륵~” 연방 앓는 소리를 낸다. 병든 노인의 신음소리처럼 처량하게 들린다. 외출하기 전까지도 가속도가 붙은 자전거처럼 힘차게 돌아갔는데,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지금껏 혼신을 다해 목을 좌우로 돌리며 공평한 바람을 제공했었다. 목이 부러졌다는 것은 온몸이 마비되는 일이다.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죽음을 예고하듯 그가 마지막 이별을 고하며 간간이 밭은 숨을 내뱉는다. 이제 옅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지금껏 온몸을 뜨겁게 굴리며 살아왔건만 열정페이는커녕 노동의 대가도 보상받지 못한 채 과로사한 것이다. 그러나 안쓰럽게도 세상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슬프다. 오직 인간을 위해 희생하다 소멸하는 삶. 어찌 보면 이 땅에 모든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모든 만물은 생성과 소멸의 섭리로 이어진다. 노후 된 탓에 그의 생명인 냉기가 소멸된 것이다. 그도 한때는 날개를 휘저으며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이면 그 몸값은 상승세를 타고 고공행진을 했었다. 오랜 시간 그와 함께 동고동락한 사이. 늙었지만 선풍기의 존재가치는 컸다. 버튼만 누르면 강, 약, 리듬을 타고 시원하고 활기찬 바람을 건네주었다. 더위에 지친 가족들 땀방울을 씻어주고, 장마 때면 퀴퀴한 냄새 나는 옷을 상큼하게 말려주지 않았던가. 복날에는 선풍기 앞에서 수박을 쪼개 먹고 달콤한 오수를 즐기고 책을 읽었다. 선풍기를 잃고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된다.

늙은 선풍기에서 성성했던 친정아버지의 삶이 투영된다. 아버지는 쉼 없이 돌아가는 선풍기였다. 시골마을에 있던 우리 집은 꼭두새벽부터 아버지의 사업장인 공장 문이 열렸고, 고장 난 차들이 밀려들면 아버지의 고된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슴푸레한 새벽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나는 잠을 설치곤 했다. 집집마다 끼니를 걱정하던 궁핍했던 시절,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꾼들을 지휘하셨고, 중대한 작업은 아버지가 몸소 해내셨으니 기술만큼은 어디에서나 인정받았다. 거친 손은 닳고 닳아 지문이 없어졌어도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으셨으니 육신이 고달픈 만큼 재산은 축적됐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밤새워 전문 서적을 탐독하셨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밥 한 끼 편하게 드신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기 새처럼 움츠리고 있는 나를, 도시로 보내 공부시켰고 세상에 날개를 펼 수 있도록 애써주셨다. 당신은 고단했지만 자식만큼은 편히 살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아버지. 무쇠처럼 단단했던 몸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셨다. 결국 암 투병으로 지친 몸은 영원한 휴식의 땅에 묻히셨다.

늙은 선풍기를 바라본다. 아버지는 그렇게 살아도 되는 줄 알았다. 세월의 연고에 아버지도 늙고 병든다는 걸 왜 몰랐을까. 아쉽고 힘들 때면 부모님을 찾는 어리석은 자식이라는 존재.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의 신음소리를 외면하면서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은 잊고 살아왔다. 평생 아버지가 보여준 근면 성실한 생활방식은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내게 삶의 지침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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