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인구시책도 변화해야
지자체 인구시책도 변화해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7.1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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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올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1.0명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합계출산율이란 가임기(15~49세)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를 예측한 수치이다. 지난해 출생아는 35만7700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올해는 32만명에 그칠 것이라고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출생률 하강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설마하던 인구 감소시대를 맞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는 얘기다.

정부는 그동안 합계출산율을 OECD 평균 수준인 1.7명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출산장려정책에 매진했다. 12년간 쏟아부은 예산이 120조원을 넘는다. 그러나 이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은 합계출산율 1.0이라는 참담한 결과 앞에서 밑 빠진 독에 부은 물이 돼버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고 직접 위원장을 맡아 출산정책을 진두지휘했지만, 돈과 복지 수준의 정책으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사실 출산율 회복은 사회 개조에 달렸다. 큰 틀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가가 양육을 책임져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없애겠다는 물리적 정책을 넘어 낳은 아이들의 기회까지 보장되는 사회를 제시해야 한다. 무려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딸들이 회장 영접행사에 강제 동원돼 회장의 팔짱을 끼고 율동과 노래로 교태를 부려야 하는 사회에서 출산이 축복이 될 수 없다. 남의 집 딸들을 시녀 부리듯 한 회장님의 따님은 집에서 살림하다 졸지에 대기업 상무로 취임했다. 신분제가 잔존한 나라에서 백 없고 배경없는 젊은이들이 출산을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나마 정부가 최근 출산율 높이기와 보육 중심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쪽으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러 시책을 선보였지만, 일과 육아의 양립이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입지를 배려하고 넓혀야 하며, 결혼이라는 의식을 거치지 않은 비혼 가정에도 관심을 높여야 한다.

중앙정부가 맥을 잘 못 짚고 헛발질을 하는 동안 같은 정책을 답습한 일선 지자체들도 헛심만 쓴 꼴이 됐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입지가 열악하고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지자체들은 사망통지서까지 받아들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인구 감소로 30년 안에 84개 기초지자체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충북에서도 괴산, 보은, 단양, 옥천, 영동 등 5개 군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영동군은 마지노선으로 사수하던 인구 5만선이 지난달 무너졌다. 초고령 지역인 영동은 출생자가 사망자의 절반도 안돼 인구 감소는 숙명적이었다. 전출을 줄이고 전입자를 늘려 출생자와 사망자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었다. 농촌총각에게 결혼자금까지 대주는 다양한 출산정책을 추진하고 군부대와 대학을 찾아가 주소를 옮겨달라고 읍소했다. 급기야 공무원들에게 실적이 할당됐다. 주소만 옮기는 위장 전입에 공무원이 전입자의 주민세를 대납해주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영동군이 인구 유지에 목을 맨 이유는 5만선이 붕괴될 경우 조직 축소와 교부세 감소라는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세복 영동군수는 “더 이상 인구 5만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인구유입 정책은 유지하되 공무원들을 변칙적 인구 늘리기에 동원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 행정 에너지를 우량기업 유치와 군민 행복을 위한 시책 발굴로 돌리겠다고 했다. 주민등록부에만 이름을 올린 허수의 인구로 인구 5만을 연명하는 기만적 행정을 중단하겠다는 뜻이다. 더 서둘렀어야 할 당연한 결정이다.

영동과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는 지자체가 한둘이 아니다. 박 군수의 결단에 누구보다 중앙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정부는 최악의 출산율을 만들어 놓고도 인구절벽에 몰린 약소 지자체들끼리 인구를 뺏고 뺏기는 소모적 경쟁을 방치해 왔다. 수도권 규제를 포기해 지방 고사화를 부채질 하는 정부가 상벌제 비슷한 것을 마련해 지자체 인구정책을 닦달한 것은 몰염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스스로 인구정책의 오류를 인정했듯, 일선 지자체들도 합리적으로 방향을 바꾸도록 도와야 한다. 무엇보다 임의로 기준을 잡아 인구감소에 페널티를 매기는 낡은 지침부터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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