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식민지대학
경성식민지대학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7.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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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경성(京城)을 어떻게 정의할까? 일본강점시기의 서울을 일컫는 말, 정도 되지 않을까 한다. 사전적으로는`도읍의 성, 서울의 옛 이름' 정도가 되지만, 너무 포괄적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한성(漢城)도 포함된다. 한성부(漢城府)의 줄인 말이다. 글쎄, 서울의 옛 이름이라면 서라벌도 된다. 경성은 일본인이 만든 이름이니 아무래도`식민지시기의 서울의 이름'이라고 분명히 해야 솔직한 것 같다.

복고풍이라고 말해야 할지, 시쳇말로 빈티지라고 해야 할지, 시중에서 술 이름에도, 술집이름에도`경성'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새마을상회가 유행이더니, 경성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새마을상회 전에는 시간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보다는 공간적으로 이동을 하는 `민속주점'이라는 시골풍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경성과 관련된 불만은`경성제대'(京城帝大)라는 표현이다. 정확히는 `경성제국대학'인데, 아직까지도 교과서의 소개란에 종종 등장한다. 이것도 복고풍이고 빈티지일까?

한국유학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소개되는 안동의 도산서원을 보며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중국인 현대신유학 연구자를 만난 적이 있다. 에둘러 말하기는 했지만, 왜 아직도 퇴계의 후손이 서원을 지키냐는 것이다. 역사를 역사로 객관적으로 놓지 못하는 한국유학의 상황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것이라면 객관적으로, 곧 학문적으로 보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접근할 것은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사적인 의중이 들어가면 곤란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경성제국대학'이라는 표현을 오늘날까지도 쓰는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알다시피 제국주의 일본시대에 세운 대학은 적지 않다. 현재는 `제국'이라는 말을 뗀 채 존속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를 기준으로 말하는 언어적 습관상 제국이라는 말은 붙지 않는다. 동경은 동경대학이고, 동북은 동북대학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제국이라는 말을 아직도 관행적으로 붙이고 있을까?

나는 좋게도 나쁘게도 추측해본다. 일단 좋게 말해보자. `경성제국대학'은 사라졌다. 따라서 그 역사의 이름을 바꿀 수 없다. 만일 사라지지 않고 그 이름이 남아있을 수 있었다면, 다시 말해, 아직도 `경성대학'이 있다면 현재적 표현이 과거적 표현을 이겨 제국이라는 말이 떨어질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붙어 있다.

나쁘게 말해보자. 우리는 일제 청산이 되지 않았다. 심하게 말해 청산할 의지가 없다. 아니, 아직도 제국주의 시절에 향수를 느끼고 있다. `싫지 않다. 오히려 그립다. 더 권위 있어 보인다.' 이런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대한민국의 교과서에도 `경성대학'이 아닌 `경성제국대학' 출신임을 강조하고 싶은 것을 아닐까?

위에서 내가 정의한 대로라면, 경성은 서울의 식민지 시절의 이름이므로 `경성제국대학'을 의역하자면 `경성식민지대학'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말 경성제국대학은 우리말 `경성식민대학' 또는 `경성식대'로 번역되어야 하지 않을까?

만일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면 얼마나 많은 경성식민지대학을 졸업하신 분들 또는 그 자손이 그 말을 쓰고자 할까? 아닐 것이다. 뜻으로 보면 수치스러운 것이, 번역되지 않는 순간 어떻게 영광스러운 것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우리 같은 인문학자들이 번역이 반역일지라도 번역을 하는 이유다.

미국사람들은 식민(植民; colonial)이라는 표현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식민지는 곧 `동양척식회사'의 `척식'(拓殖)은 곧 식화(殖貨)의 개척이 아니라 수탈을 떠올리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충북대학교 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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