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을 열며
마음의 창을 열며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8.07.1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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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계절과 날씨는 마음의 창이다. 그날 날씨에 따라 마음의 창이 열렸다 닫혔다 한다. 비의 신, 태풍 쁘라삐룬은 이름처럼 얌전했다. 남부지역의 피해와는 달리 내가 사는 청주는 비가 밤새 조용히 내렸을 뿐,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이른 아침 고요 속에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청량하다. 나는 빗소리를 데리고 산남천으로 향했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철부지 아이가 된 기분으로 천변을 걷는다. 흙을 보자 맨발로 걷고 싶었다. 적당히 촉촉한 흙을 밟으니 초록 기운이 솟는다. 빈 마음(空心)으로 걷고 있으니 오늘 아침은 내게 걱정 근심이 있을 리가 없다. 즐비하게 늘어선 벚나무 잎들이 물고기처럼 허공을 향해 유영한다. 까치 소리도 말끔히 씻긴 나뭇잎처럼 투명하다. 갈증에 허덕이던 풀들도 생기를 찾아 제각기 키 자랑을 한다. 딱 그만큼, 과유불급이 아닌 자연이 가져다주는 적당함의 미학이다. 괜히 기분이 고조되면서 숙연해진다. 과다한 욕망으로 시끄러운 인간사와는 달리 자연은 조화롭게 세상을 안정시킨다.

한 달 전 내가 속한 봉사단체에서 산남천을 청소했다. 산남천을 청소해야 한다고 생각한 지 삼 년이 지나서야 겨우 실천에 옮겼다. 청소를 하기 전에는 운동 삼아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영 찝찝했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흐르는 개울이라 아파트 5층 높이 정도로 깊다. 그래서 청소하기가 더더욱 쉽지가 않다. 정말 큰 맘 먹었다. 다행히도 젊은이들이 대거 봉사단체에 들어와 요즘은 일하기가 수월하다. 나는 이 거리를 거닐면서 악몽 같은 하나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비했던 적이 있다.

산남천 개울이 깊기도 하거니와 위험해서 사람은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는다. 평상시 호기심이 많은 나는 저 바닥 정도야 하며 내려갔다. 폐기물을 줍다가 보니 동행한 사람들은 웃자란 풀 속에 묻힌 내가 보이지 않았는지 다 앞서가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서 그런지 도로변에 뒹구는 폐품과는 다른 물건들이 많았다. 약간의 물이 흐르는 다리 밑을 지나가는데 커다란 현수막이 길게 누워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집게로 들었다. 아뿔싸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 지렁이의 집성촌이었다. 그 어느 여름에도 개울가에 정화운동을 나갔다가 휴지를 줍는다고 집은 것이 잠자고 있던 구렁이를 건드려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그때 기억과 오버랩 되어 들었던 집게를 집어던지고 도망치다시피 그곳을 빠져나왔다.

계단 위로 올라와 그 기억을 지우려고 아무리 애써도 머릿속은 얽히고설켜 꿈틀거리는 형상만 왔다갔다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니 마음과 머리부터 정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발적 정신분석 치료에 들어갔다. 장자가 귀도 마음도 아닌 기(氣)로 들으란 말은 무슨 뜻일까? 그래 지금 내가 지렁이로 인해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가진 고정관념일 거야. 지렁이도 하나의 생명으로 지구에 왔을 때는 다 이유가 있을 터, 왜 나는 지렁이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는가. 내가 지렁이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내 생각일 뿐이야. 초록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천변에 서 있는 나뭇잎들이 햇빛에 반짝인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반짝이는 나뭇잎으로 변신시켜 머리에 담았다.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각인된 기억의 파편. 마음의 창을 열고 초록 물결 위를 걷는다. 태풍 쁘라삐룬이 지나간 산남천에 거대억새 사이로 똘망똘망 개울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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