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거사
무언거사
  • 최명임 수필가
  • 승인 2018.07.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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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명임 수필가
최명임 수필가

 

50도는 족히 될 것 같은 체감온도에 푹푹 찌는 심사를 달랠 겸 육거리 장에 나섰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묘수를 찾는데 삼복더위는 장터에도 바글거린다.

야들야들한 진초록 푸성귀가 삼복염천을 감당 못하고 악취로 헛구역질이 난다. 버둥거리는 생물은 살아있다 큰소리치지만, 허여멀건 한 눈빛이 마뜩찮다. 여기저기서 썩어 나가는 냄새가 역겨운데 세상 이면에도 이 냄새 진동하리라.

더위 먹은 남새에 물을 뿌려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촌로의 목젖으로 뜨거운 물기가 흘러내린다. 삐질 삐질 새어 나온 땀내가 맡아보지 않아도 우리 어머니의 냄새다. 저러고 계시면 체감온도 100도는 될 것 같은데, 짜증이 뻗쳐 육두문자 한 번쯤 튀어나올 법한데 견뎌내고 계신다. 견뎌내는 것일까, 가년스런 촌로에 불과해 보이지만 무언거사인지도 몰라. 땀에는 흙을 벗어나지 못한 푸성귀의 냄새가 배어 있고 파란을 거친 뒤에 다져진 연륜으로 향기가 날 것 같다. 푸성귀 한 바구니 달랬더니 후한 덤도 주셨다.

돌아 나오다 코 낀 명태 네 마리를 만 원 주고 샀다. 여름 생선 잘못 사면 헛일이라는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난전 아지매 호언장담한다. 운명에 코를 꿰었을 망정 살 색이 유난히 맑다. 오장육부 다 버리고 점잖게 앉았기에 무언거사인가 했다.

집에 돌아와 장바구니를 푸는데 슬금슬금 흘리는 무엇이 개운치가 않다. 도로 물리러 가나, 그냥 먹나 둘이서 실랑이하다가 냉동실에 묻었다. 고약한 냄새도 얼릴 줄 알았다. 분명한 냉동실도 빈틈이 있는지 냉장실만 열었는데 코끝이 아리다. 생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누렁이나 주어야겠다.

무언거사 -. 그도 사람이라 재채기와 사랑은 숨기지 못할 터, 가끔은 그것 말고도 슬금슬금 흘리는 것이 있다. 나는 단순 무지해서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기대치가 최상인 사람은 완벽할 것이라고 자주 착각을 한다. 문득 이상야릇한 냄새가 날 때면 내 안에도 있는 그것과 비슷해서 동질감을 느낀다. 무언거사는 뒷간엘 가도 향기가 나는 줄 알았다. 구린내 펑펑 풍기는 여느 사람과 같고, 언뜻언뜻 풍기는 인위적 향기로 메스꺼움을 느낄 때는 은근히 쾌재를 부른다. 내 열등감이 조금 누그러진다고나 할까.

육거리 장날 만난 실없는 거사가 속 빈 강정이었나 보다. 그러니 견공의 한 끼 식사로 족하지. 풍문에 번듯한 면모를 한 허당이 많은데 소문만 거나한 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쾌재를 부를 테지만, 세상이 이리 더울 때는 장마당 촌로의 실살스런 향기가 더욱 그립다.

툭 터져버린 실밥 사이로 뉘 한 줄금 쉰 냄새 고약하다. 다시 꿰맨다고 사라지지 않을 별스런 인(人)내라서 여름 더위 배가 된다. 육거리 장날 삼복염천이 쏘아대는 광선에 결국 뱉어 놓고만 무언거사의 그 속내를 생각하며 변질의 의미를 곰곰 되씹어 본다.

나도 한보따리 꿰매놓은 것, 누렁이도 싫어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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