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수다
밥상머리 수다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8.07.09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진짜 맛있어요.”

저녁밥을 먹으며 세 살짜리 계집아이가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오독거리며 씹는 소리도 야무지다. 싫고 좋다는 표현에 거리낌 없이 당당한 것도 보기 좋다. 반찬이라야 밥 위에 얹어 주는 무장아찌뿐인데도 신이 났다. 가리는 음식은 없어도 유별나게 좋아하는 반찬이 무장아찌와 두부, 그리고 청국장이다. 어린 것이 칼칼한 것을 좋아해 보리밥 해서 배추 겉절이나 여러 가지 나물 넣고 벌겋게 비벼놓으면 서슴없이 숟가락을 들이댄다.

매운맛에 호호거리면서도 진짜 맛있다는 말을 반복하는 작은 입술이 앙증맞다. 된 발음이 서툴고 명사와 조사를 무시하며 알아서 들으라는 듯 쏟아내는 말들은 귀를 즐겁게 한다. `밥상머리교육'은 저만치 밀어놓고 `말이 많으면 복이 나간다'는 속담도 무색하다. 눈을 맞추고 아이가 하고자 하는 말에 추임새를 넣다 보면 식사는 뒷전이고 즐거운 수다만 밥상 위에 수북하게 올라 있다.

아이가 없을 때는 친구들과의 수다가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집에서 맞아야 할 저녁 시간을 비우고 밖으로 나갈 때면 늘 불안감이 함께 했지만 한가한 점심시간은 편안해서 수다 떨기에 안성맞춤이다.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별것도 아닌 일로 박장대소하고 서로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관계가 동성의 친구들이다.

남편자랑은 건너 띤 지 오래다. 도토리 키 재기 같은 자식자랑이 밥상을 넘어오고 더러는 이재에 밝아 어느 곳에 아파트를 사서 임대했다거나 신도시에 땅을 샀더니 별로 오르지 않았어도 손해는 없다고 슬쩍 자랑을 해도 이젠 질투 나지 않을 만큼 나이도 들었다. 노인병원이나 요양원에 계신 부모님과 돌아가신 분까지 수다로 모셔오고 언제쯤인가 했던 얘기를 또 꺼내도 지루하지 않아 수다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결국은 시끄러운 수다에 음식점 주인의 심상치 않은 눈치를 보고 자리를 뜨지만 그런 친구들과의 즐거운 수다는 목적 있는 거래가 없으니 다음 만남을 기다리게 된다.

누구와 한 밥상에 앉느냐에 따라 수다도 달라진다. 수다스러움이 도를 넘어 말 속에 잔소리와 짜증이 섞이거나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고 시비를 걸다 애꿎은 밥상이라도 날아간다면 밥 먹는 일은 묵언 수행의 고행일터이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말문 여는 게 불안하고 불편해서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꺼리게 된다. 예의를 무시하는 부부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고 부모 자식 간에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가장 가까워야 할 관계가 아주 먼 사이가 되는 계기다. 이때만큼은 `밥상머리에서 말이 많으면 복이 나간다'는 속담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과 마주 앉으면 말 많은 사람을 질색하는 나도 몹시 수다스러워질 때가 있다.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 철없는 사람처럼 자꾸 말을 이어간다. 잠시라도 행복한 순간, 복도 함께 오는 것이 아닐까. 밥상 앞에서 무장아찌로 밥을 먹으며 진짜 맛있다고 수없이 반복하는 아이를 보면 느낄 수 있다. 즐거운 수다에는 복이 저절로 들어온다는 것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