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고도 개혁정당인가
이러고도 개혁정당인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7.08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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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국회 특활비를 여론의 도마에 올려놓은 사람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다. 지난 2011년 그는 “쓰고남은 특활비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가져다 줬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1억원을 돌려받아 자신이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때 기탁금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당시`성완종 뇌물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수사를 목전에 둔 그로서는 이 기탁금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안될 처지였다.

특활비는 수령자가 영수증 없이 쓸 수는 있지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은 아니다. 관련법은 기밀을 요하는 정보활동이나 사건 수사, 그에 준하는 활동으로 사용처를 제한한다. 특활비를 법정 용도와 달리 청와대에 상납한 전직 국정원장들은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이 공금을 부인에게 상납(?)한 홍 전 대표가 아직까지 무사한 이유를 모르고 있다.

홍 전 대표는 당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해명까지 함으로써 성난 여론에 휘발유를 뿌렸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홍 전 대표에게 맹공을 퍼부었고 자성과 개선의 목소리도 들려오는 듯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특활비 예산이 다소 줄어든 점 빼고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국회가 그동안 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와 지리한 법정공방을 벌인 게 전부였다.

국회는 대법원이 특활비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질질 끌다가 최근에야 지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치만 공개했다. 자료에는 공개를 꺼린 이유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매달 정당(교섭단체) 대표는 6000만원, 상임·특별위원장은 600만원, 일반 의원은 50만원씩을 받아 밥값, 회식비, 직원격려금 등 특수활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사용했다. 3년간 이렇게 나눠 쓴 혈세가 240억원을 넘는다.

그나마 성난 민심에 호응한 정당은 정의당이 유일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달부터 특활비 폐지법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발의에 필요한 서명 의원 10명을 확보하지 못했다. 법안에 동조한 의원은 정의당 전원과 바른미래당 1명 등 7명에 불과했다. 특활비를 부정하는 여론이 재점화된 최근에야 가까스로 10명을 채워 발의요건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점에서 개혁정당을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시시때때 합창해온 적폐청산과 개혁은 과연 어떤 것인지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바른미래당까지 특활비 폐지를 당론으로 정한 마당에서 투명성과 개선을 운운하며 공돈에 집착하는 민주당을 개혁정당으로 인정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유감스럽지만 민주당은 실제로 개혁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다. 지난 선거에서는 선거구획정위 권고를 일축하고 기초의원 중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개 한국당과 나눠 먹기에 바빴다. 만만한 선거구는 2명을 공천해 싹쓸이하기도 했다. 선거구 분할에 의기투합한 두 당은 전국 기초의회의 90.5%를 차지했다. 다양한 정치세력이 지방의회에 진입해 다양한 민의를 대변토록 하자는 개혁적 가치는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강원랜드 채용비리에 연루된 권성동 한국당 의원의 수사를 막는 `방탄국회'에 부역한 대목에서는 절망감을 안겼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한 이유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대부분 응답자는 문 대통령이 잘했기 때문이거나, 자유한국당이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이 잘했기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은 4.1%에 불과했다. 민주당이 이 대목을 곱씹었다면 특활비 폐지법안을 정의당보다 먼저 추진했어야 한다. 선도적 역할은 고사하고 정의당이 발의조건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구경만 했다. 정의당 지지율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창당 이래 처음으로 10%를 돌파했다. 민주당은 발밑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는 이 조짐조차도 읽지 못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고 나서 “높은 지지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압승을 가져다준 민심을 정면으로 배신하는 민주당의 행태를 보노라면 대통령의 이 말에서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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