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시간
보이지 않는 시간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8.07.0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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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박명애 수필가

 

야구가 재미있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더니 요즘 한화 이글스 경기는 가슴을 쫄깃하게 만든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눈을 뗄 수가 없다. 헛스윙으로 몸이 돌아가고 수비 실책이 나오기도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경건하다. 한화의 마법은 져도 속상하지 않다는 데 있다. 선수들의 밝은 표정은 큰 점수 차로 지더라도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십 년간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하며 오랜 침체기속에서 관심을 잃어가던 팀이 올해엔 포스트 시즌 진출을 꿈꾸고 있다. 야구는 예측할 수 없는 경기다. 화끈한 타격전이 될 때도 있고 선발 투수들의 위력적인 플레이가 경기를 지배하며 타선을 무력화시킬 때도 있다. 시즌 초 감독의 말을 빌자면 한화는 100% 짜여진 팀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잠자는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이는 힘은 어디에서 온 걸까? 아마도 외부의 비판이나 담론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내부의 변화를 추진해온 팀의 노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문적 식견은 없지만 나는 여러 요인보다도 보이지 않는 시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생각처럼 게임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잦은 게 스포츠 경기다. 점수를 낼 수 있는 중요한 찬스에 제 역할을 해 스타가 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왕년의 스타라도 팬들의 기대와 정반대 길을 걷는 선수도 있다. 요즘 한화에도 타격 침체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선수가 있다. 일부 팬들은 그에게 2군으로 내려가라는 혹독한 비판을 쏟아낼 정도다. 하지만, 고민을 상담하러 온 선수에게 들려준 감독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타격도 다양하고 오래된 경험이 쌓여야 하는 거라고. 너는 주전으로 뛴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아직 어리니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더불어 네가 수비나 주루에서 잘하는 부분이 더 많으므로 타격에 흔들리지 말고 네가 잘하는 걸 하라고. 큰 선수가 되려면 지금의 시련을 극복해야 하고 내야의 중심으로서 앞으로 팀을 이끌어가야 할 사람이니 항상 그라운드에서 밝은 모습으로 주도적 플레이를 하라고.

2군으로 내려 보내기보다 오히려 어깨를 두드려주는 모습에서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이 감동을 준다. 아직 이십 대인 그는 불면의 밤이 이어지는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게임이 끝난 뒤 야간 특타 훈련을 자청했다. 그리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팬들은 부진에 빠진 그의 이야기를 화두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귀가 예민해진 그에게 들려온 말은 그의 부활을 위한 건배사였다. 이런 응원들은 그를 든든한 팀의 버팀목으로 만드는 힘이 되리라.

월드컵 본선에서 16강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귀국한 선수들에게 계란투척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여러 가지 면에서 쇄신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결과와 관계없이 응원하고 박수쳐주는 진정한 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땀과 눈물과 고통이 배인 처절한,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간이 그들을 키웠기 때문이다. 비로 경기가 취소된 시간에 외롭게 타격훈련을 했을지도 모르는 그 선수에게 응원을 보낸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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