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월하정인'은 언제 그려졌나
신윤복의 `월하정인'은 언제 그려졌나
  • 김태선 충북과학고 교감
  • 승인 2018.07.04 17: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김태선 충북과학고 교감
김태선 충북과학고 교감

 

사람들 사이에 우스갯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술에 취한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아, 달도 밝다!”라고 한 취객이 말하자, 또 다른 취객이 “저게 무슨 달이야, 그건 해야”.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은 지나가던 행인에게 물었다. 행인 왈 “저도 이 동네가 처음이라 모르겠는데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술 취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든지 두 바보보다 더한 바보가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재미있네 하고 웃어넘긴다. 그런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정말 우스갯소리인가 생각되어진다.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그림은 대부분 기록이 없어 `연도 미상'인 작품이 많고, 국보 `월하정인'도 그러하다. 그런데 2011년경 한 천문학자가 과학적으로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았다. 초승달은 오른쪽이 볼록하고, 그믐달은 왼쪽이 볼록한데, 그림 속 달의 모습은 위쪽이 볼록하므로 이러한 모양은 부분 월식 때나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림 속 글 `야삼경'은 밤 12시 무렵을 말하며, 그림 속의 달이 처마 근처까지 내려와 있는데, 이처럼 태양의 남중고도가 낮은 경우는 여름을 뜻한다. 조선시대 왕명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를 토대로 여름철 밤에 부분월식이 일어난 시기를 추정한 결과, 1793년 8월 21일 여름에 월식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월하정인'을 그린 시기를 추정해내었다는 점에 고무된 혹자들은 신윤복이 활동하던 시기는 사물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던 진경산수의 시대였으며, 신윤복이 그린 그림에 등장하는 어떤 달도 동일한 모양이 없고 다르다는 점을 들어 그림 속 시간적인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국보 `월하정인'에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멋스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혹자들은 그 달이 부분월식이라면 그림에서 달의 아랫부분을 달무리가 지는 것이 아니라 새까맣게 그렸어야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달이 지구 그림자에 가려질 때 가려지는 부분이 검게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저마다의 논리를 앞세워 어느 한 쪽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이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림 속 달 모양을 통해 신윤복이 언제 그림을 그렸는지 논쟁하는 사람들 속에 있는 나도, 서두에서 언급한 우스갯소리에 있던 한 사람의 취객은 아닐까? 나름의 근거에 따라 내 주장을 펼치며 동시에 나를 강조하는….

진실은 누구도 모른다. 단지 양쪽 주장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술에 대해 해박한 사람들에게 과학의 관점을 보여주고 과학에 대해 해박한 사람들에게 미술의 관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윤복의 `월하정인'을 둘러싼 논쟁은 학생들에게 하나의 훌륭한 교육 자료가 된다는 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