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北 가족 만나려나” 80대 노인의 애끓는 망향가
“죽기전에 北 가족 만나려나” 80대 노인의 애끓는 망향가
  • 조준영 기자
  • 승인 2018.06.27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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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국 충북지국 이북도민 연합회장
1차 후보자 추첨 탈락 … 가슴 미어져
1985년 이후 만남 2만7000명 불과
“생사확인 ·편지라도 주고 받았으면…”
이산가족 1세대인 김관국씨가 이북5도 충북도사무소에서 6·25 전쟁때 가족과 헤어진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이산가족 1세대인 김관국씨가 이북5도 충북도사무소에서 6·25 전쟁때 가족과 헤어진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이산가족이 사라지고 있다.

분단 72년, 6·25전쟁 발발 68년.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혈육과 재회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뜨는 이산가족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까닭에서 남북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합의한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하지만 후보자 추첨이 이뤄지면서 메마른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적잖다.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산가족은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에 들어갔다.

“평생의 그리움을 실낱같은 희망 하나로 견뎠건만….”

6·25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와 평생을 보낸 김관국씨(84·충북지국 이북도민 연합회장)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북녘에 두고 온 가족만 생각하면 미어지는 가슴을 어찌할 길이 없어서다.

평양 순안에 살던 김씨는 1950년 12월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평양 일대 원자폭탄이 떨어진다'는 소문에 둘째 누이와 함께 고향 땅을 떠난 게 마지막이었다.

하루 이틀 뒤 따라온다던 부모님과 남은 형제는 이후 영영 볼 수 없었다. 언젠간 만나겠지 하는 희망 하나로 견딘 세월만 어느덧 68년. 지나온 만큼 그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넉넉지 않다.

“`전쟁이 끝나면 보겠지', `평화가 오면 만날 수 있겠지'. 막연한 희망만 품고 산 세월이 벌써 반백 년이 훌쩍 넘었어. 이제 그리움을 넘어 사무칠 지경이야.”

그런 그에게 8·15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실향과 이산으로 생긴 가슴 속 멍을 지울 유일한 기회였다.

하지만 결과는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1차 후보 명단에조차 들지 못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전국 이산가족 신청자 5만7000여명을 대상으로 추첨을 진행, 1차 후보자 500명을 가려냈다. 90세 이상 고령자를 50% 배정하고, 직계·형제·자매·3촌 이상 가족 관계 순으로 가중치를 부여했다.

“이산가족 등록을 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뽑힌 적이 없어. 이렇게 안 될 수 있나 싶기도 해. 우리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의 말처럼 상봉하는 이산가족은 극히 소수다. 오죽하면 `천운'이라고 여겨질 정도다.

이산가족 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1985년 이후 상봉한 이산가족 수(화상 포함)는 정부·민간 차원 통틀어 2만7000여명에 불과하다. 반면 1988년부터 올해 5월까지 등록된 이산가족은 13만2124명이다. 이 중 7만5234명(57%)은 가족과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충북으로 한정하면 등록 인원이 10년 전(2746명·2008년 5월 말 기준)과 비교해 1000여명 가까이 줄었다. 다시 말해 이산가족 대다수가 가족과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다.

“남은 이산가족을 위해서라도 남북이 통 크게 합의할 시점이 왔어. 상봉이 어렵다면 생사 확인이나 편지라도 주고받게 해야지. 한을 안고 떠날 순 없잖아.”

한반도 평화 훈풍을 타고 극적으로 성사된 이산가족 상봉은 오는 8월 15일 북한 금강산 지역 면회소에서 열린다. 이 자리에 설 기회를 얻는 이산가족은 남북 각 100명뿐이다.

/조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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