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 날궂이
일상생활 - 날궂이
  •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8.06.26 2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후두두 후두두둑, 빗방울 소리에 새벽잠을 깬다. 옥상에 올려놓은 우물마루 평상이 비에 젖을까 봐 부랴부랴 옥상으로 올라가 비닐로 덮는다. 얼마 전 캔 마늘과 양파를 보관하는 옥상 창고도 문을 닫고 비 마중을 하느라 캄캄한 새벽에 날궂이다. 비가 온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워낙 더운 날의 연속이라 환기를 위해 열어두었던 문은 닫고 비 피해가 없게 일일이 점검을 한다.

장마가 시작된다고 알고 있었던 터이라, 미리 준비를 하긴 했지만 벌려 놓은 게 많다 보니 잡다하면서도 긴 손길을 요한다. 장마가 오기 전에 할 일이 많다. 마늘, 양파, 감자 등 뿌리식물을 캐고 서늘한 그늘에 보관하기 위해 묶음으로 만들어 걸어둔다. 수선화, 튤립, 히아신스 등 알뿌리도 캐어 잘 보관해둔다. 추식을 위해서이다. 꽃이 진 후 비대해진 알뿌리를 캐지 않고 내버려두면 비에 썩어 내년에는 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웃자란 잔디도 깎는다. 가능한 바짝 잘라주고 자른 잔디는 고추밭에 멀칭을 해준다. 빗물에 흙탕물이 튀어 병에 걸리는 것을 방지하기도 하지만, 흙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밭고랑도 조금 더 파서 두둑을 만든다. 빗물이 고이며 뿌리가 썩을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무척이나 덮고 따가운 햇볕 아래지만 장마를 대비해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이유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새벽녘 간간이 떨구던 비는 속도와 양에서 우월하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바닥의 흙을 높게 올리고, 소리의 음량을 높인다. 가뭄에 비비 꼬이던 고구마 순도 생기를 얻는다. 오늘 내리기 시작한 비지만 벌써 땅속에 스며 알뿌리가 커지는 듯하다. 다슬기모양의 뿌리를 가진 초석잠도 흙을 밀어내며 영토를 확장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이다. 옥수수, 가지, 배추도 녹색의 빛깔을 더한다. 감나무 밑에는 부처손이 물을 머금고 기지개를 피며 잎을 피워내고, 탐스럽게 핀 수국의 망울은 더욱 비대해지는 듯하다. 비가 생명의 기운을 더하는 때이다.

장마기 시작되면 더욱 또 다른 손길이 필요하다. 수국, 제라늄, 야래향, 로즈마리 등 장마철에 삽목이 되는 것들의 번식준비이다. 부정아 중심으로 가지치기하듯 잘라 꺾꽂이 준비를 한다. 화분에 거름기가 없는 모래를 담아 두고 하나하나 삽목한다. 알도 크고 단맛이 강한 블루베리는 배양토에 삽수를 한다.

장마철은 정원과 텃밭 관리작업이 분주한 시기이다. 가능하면 비가 올 때 영양분이 될 것을 함께 제공한다. 물론 빗물만으로도 영양분이 되긴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짙고도 깊은 녹음을 바라는 준비 작업이다. 짙고도 깊은 녹음은 건강한 열매를 준다. 그리고 무더운 한여름 온도를 낮추어주고, 햇빛에 노출되어 상한 피부와 눈을 치유해 준다. 그리고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 또한 배가시켜 준다. 그래서 가을을 대비해 장마철에 더욱 분주한 이유이다.

비가 오는데 웬 날궂이라 생각하겠지만, 지금이 더 자라고 번식할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일을 할 수 없을 만큼의 나쁜 조건이라 하는 이때가 더 나은 것을 위한 준비단계다. 늘 좋지 않은 조건이라 한다. 이래 저래서 할 수 없다고 이유를 대지만, 시간은 그저 흘러가듯이 배정되어 있진 않다. 단지 알지 못해서 흘려보낼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