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검·경의 권한 다툼
부끄러운 검·경의 권한 다툼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6.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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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경찰이 창설 이래 추구해온 오랜 숙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가 엊그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하고, 그 내용이 담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법안이 확정되면 경찰은 검찰의 지휘 없이 독자적으로 수사하고 종결도 할 수 있게 된다. 검찰이 석연찮은 이유로 영장청구를 하지 않을 경우 고검에 이의를 제기해 제동을 걸 수도 있다. 두 기관의 위상이 수직관계에서 수평관계로 재정립된 것이다. 1948년 `경찰은 범죄수사에 있어 검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검찰청법이 발효된지 70년 만이다.

그러나 검찰의 통제권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경찰이 송치하기 전까지는 수사에 개입할 수 없지만 송치한 사건에 대해서는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불응한 경찰관을 직무에서 배제하거나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경찰이 불송치(무혐의 종결)를 결정한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자료를 넘겨받아 타당성 여부를 따질 수도 있다. 부패범죄, 경제·금융범죄, 선거범죄 등 특수수사는 검찰 소관으로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조정안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엇갈리듯 검찰과 경찰의 반응도 각각이다. 검찰은 조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검찰은 수사를 하지 말고 경찰이 수사한 결과를 보완이나 하라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보완 수사 요구에 불응할 때 담당 경찰의 징계요구권을 보장했지만 경찰청장이 거부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견제 무용론도 제기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충격을 받고 우려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국회 입법 논의에 적극 참여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일각에서도 영장청구권의 검찰 독점이 유지된 데 반발하는 분위기다.

“검찰이 영장청구권을 독점하는 한 수사권 독립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수사한 결과를 검찰에 평가받고 처분을 기다리는 모양새가 됐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조정안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두 기관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준다. 이번 수사권 조정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세계적 추세와 과도한 검찰권력을 개혁해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조치이기는 하지만 불신을 쌓아온 검찰이 자초한 탓도 크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갈수록 떨어져 최근에는 정부기관 신뢰도를 조사할 때마다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검찰을 개혁하라는 국민적 요구를 정권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국민의 질책을 외면해온 검찰은 지금 푸념이 아니라 자숙을 해야 마땅하다.

경찰은 검찰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가 수십년간 유보돼온 이유를 겸허한 마음으로 되새겨야 한다. 검찰개혁이 시도될 때마다 문전에서 무산된 것은 검찰 권력을 분담할 유일한 기관인 경찰이 역량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권 독립이 거론되면 검찰이 움켜쥐고 있던 경찰 비리를 언론에 폭로해 여론을 `시기상조'로 몰아가곤 했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지금 수사권 독립이 추진되는 것은 경찰이 변화를 감당할 역량과 믿음을 쌓아서가 아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깊어지는 국민의 불신 앞에서 검찰이 더 이상 개혁을 거부할 명분을 잃었지만, 경찰 역시 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바닥권을 헤맨다는 점에서 검찰보다 나을 것이 없다. 수사권 조정의 내용에 투정을 부리기보다는 무너진 사법기관의 신뢰를 회복하라는 국민의 지엄한 명령을 받들 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

검찰의 수사권 견제장치들이 무용지물이 되도록 내공을 쌓고 자질을 키우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70년 만에 이룬 숙원을 성과로 일궈내지 못하면 “검찰에 수사지휘권을 되돌려주자”는 퇴행적 여론에 직면할 수도 있다.

검찰에서도 “경찰이 수사하면 뭐가 달라질지 두고보자”는 얘기가 나돈다. 경찰이 더 많은 권한을 요구하기에 앞서 각성과 분발에 몰두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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