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랬듯이
엄마가 그랬듯이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8.06.2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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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장미넝쿨이 담을 넘으며 시새워 피어오르는 계절. 고즈넉한 외딴 터에 찾아온 사랑을 보았다. 섬 같은 이곳에 용케도 찾아들었다. 페로몬의 놀라운 힘이다. 동네도 꽤 떨어져 있는 들판의 수현재를 알고 왔으니 말이다. 가끔 시커먼 녀석이 주위를 맴도는 게 눈에 띄었다. 꺼뭇하니 도둑놈 같은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쫓아버리곤 했다. 아마도 우리 집 냥이의 마음을 빼앗은 녀석이 아닐까 싶다.

냥이는 공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다. 밥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뱀을 잡아서 잘 보이는 길목에 놓아두고 쥐를 잡아 문 앞에 갖다 놓기도 한다. 주인에게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행동이다. 잘했다고 추어주면 좋아라고 벌렁 누워 아양을 떤다. 나보다도 더 애교가 많다. 이럴 때는 벌렁 누워 배를 보이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언제부터가 배가 불러 보였다. 쥐를 잡아먹어서 빵빵하려니 했다. 갈수록 점점 더 불러오는 배는 임신이었다. 여기에 온 지 7개월 만의 일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사태에 경험도 없는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언제 몸을 푸는지 몰라 산실을 마련해 두었다. 그이의 솜씨를 한껏 발휘하여 근사한 집이 만들어지고 푹신한 담요도 깔아주었다.

주말 아침, 문 앞에 있어야 할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부르면 냉큼 대답을 하면서 나타났는데 어인 일인지 답이 없다. 그이는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발걸음을 낮추고 나를 데리고 간 창고의 구석에서 조그맣게 새끼 소리가 새어 나온다. 드디어 해산을 한 것이다. 우리가 있는 동안에 몸을 풀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냥이는 꼼짝을 하지 않는다. 초산이어서, 엄마가 처음이라서 많이 긴장되어 보인다. 밥그릇을 가까이 대주자 그제야 나와서 비우고는 얼른 자리로 돌아간다. 허기졌던가 보다. 밤새 산통으로 시달렸을 텐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러다가 죽겠지 할 때까지 가야 하는 게 산통이다. 잘 견뎌준 게 대견하다.

제 새끼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경계하면서도 그이에겐 무장해제다. 살며시 들춰보니 여섯 마리가 꼬물거리고 있다.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젖을 잘 물도록 옆으로 자세를 취해준다. 어미가 된 후로는 하루 종일 집을 떠나지 않고 볼일을 보러만 나와서 마친 후에 금방 되돌아간다.

고양이의 모성애가 이토록 강한 줄을 냥이를 보고 알았다. 원래 깔끔한 녀석이라 땅을 파고 배설을 한 후 흙으로 덮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양수를 제 입으로 다 핥아서 먹고 새끼들의 배설물도 깨끗하게 먹어치운다.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엄마” 세상의 어떤 말이 이보다 더 먹먹한 게 또 있을까.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처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짝사랑이다. 어미 품을 일찍 떠나온 냥이가 사랑을 받을 새가 없었기에 새끼들을 두고 가 버릴까 봐 걱정했었다.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어야만 줄줄도 안다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우유를 먹여 키운 그이를 엄마로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질투가 날 정도였으니 넘치는 사랑을 받은 셈이다. 그로 하여 새끼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이가 큰일을 한 것이다.

넷을 고루 외사랑만 하다가 가신 엄마가 그랬듯이 나도 외아들과의 지독한 짝사랑을 하는 중이다. 내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혼자 바라보아야 한다. 때로는 서러움이 차오를 때도 있다. 그래도 절대로 포기가 안 되는 사랑이다. 그렇게 내리사랑은 아래로 끝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거니까. 자연의 섭리이자 불변의 이치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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