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의 교육
키루스의 교육
  • 양철기 원남초 교장·교육심리박사
  • 승인 2018.06.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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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원남초 교장·교육심리박사
양철기 원남초 교장·교육심리박사

 

`Mm…ah…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바빌론의 강가에서 우린 앉아있었죠),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우리는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답니다)…'

70년대 말 대표적인 그룹으로 인기를 누린 보니엠의 1978년 히트곡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ylon)'의 가사이다.

이 노래는 BC 600년경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바빌론에 정복당해 남녀노소 모두 사슬에 묶여 짐승 같은 대우를 받으며 포로 생활을 하던 유대인의 심정을 고백한 성서의 내용을 담았다. `바빌론 강가에서'의 가사는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지역이 바빌론 강가에 앉아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로, 일제강점기 만주벌판 해란 강가에서 조국을 그리며 한 맺힌 아리랑을 불렀던 우리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이때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Cyrus, BC557-530, 한글 구약성서에는`고레스'로 번역)는 바빌론을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을 고향땅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유대인에겐 이방인인 키루스는 유대인 역사서이자 신앙서인 구약성서에`여호와께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의 사자'로 기록된다.

도대체 키루스는 누구이며 어떤 리더십으로 대제국 페르시아를 건설했으며 제국을 이끌었을까?

소크라테스에게는 출중한 두 명의 제자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있었다. 이들은 동년배로 플라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반면 크세노폰은 생소한 이름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 철학의 전통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서양 철학사는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적 흐름을 전통계보로 간주하고 있다. 크세노폰과 같이 플라톤과 다른 시간에서 소크라테스를 잇는 철학적 조류는 비주류로 남게 됐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좋은 삶', `좋은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충실히 따르는 철학자이지만 플라톤의 `이데아', `이상국가'라는 철학적 교의와는 다른 견해로 진정한 리더는 `정치교사(Teacher)'가 아니라`정치가(Statesman)'가 되어야 한다며 현실적인 정치론을 펼칠 수 있는 리더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가 찾은 이상적 리더가 키루스 대왕이었다.

크세노폰은 페르시아를 대제국으로 건설한 군주인 키루스를 흠모한 나머지 페르시아 전쟁에 참가 만인대(萬人隊)를 이끌며 장군으로서의 명성을 드높였다. 소크라테스가 유죄판결을 받고 처형된 후 몇 년 뒤에는 크세노폰도 반역자로 추방돼 떠도는 용병으로 생활하는 등 험한 생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 격변의 시대를 꿰뚫어보는 남다른 통찰력을 갖게 되고 그리스 역사와 관련한 그의 저술은 정치, 군사, 역사, 철학, 수필을 망라한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 충고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에 저항했고 소크라테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키루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철저히 현실에 두 발을 디딘 키루스의 현실주의적이면서 절제를 갖춘 정치철학은 말년에 `키로파에디아(Cyropaedia: 키루스의 교육)'라는 저작을 내놓게 된다.

`키루스의 교육'은 크세노폰의 대표작으로 키루스 대왕의 리더십에 대해 고찰한 책이다. 그는 저작을 통해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풀고자 했던 `좋은 삶'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즉, 행복한 삶은 현실론에 입각한 바람직한 정치로부터 비롯되며 그 정치를 수행하는 인물은 절제와 지혜를 겸비해야 한다고 했다.

작은 학교의 장을 맡았지만 벌어질 일들은 다 벌어지고, 있음 직한 일들은 다 있기에 2500년 전의 인물 키루스 대왕에게 한 수 배우고자 `키루스의 교육'을 탐독하고 있다. 올드팝송 `바빌론 강가에서'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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