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홀린 하빠
사랑에 홀린 하빠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8.06.1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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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햇볕이 꽉 들어찬 실내가 더위를 더 몰고 오는 것 같다.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가는 계곡이 그리워지는 나날 주말을 이용하여 휴양림에 갔다. 길목마다 웃자란 풀들만 무성하고 꽃보다 잎이 무성해지는 6월, 삼림욕하는 내내 유독 행복감에 도취한 지인은 주중 내내 손주들을 돌보고 휴일엔 자유를 얻는다고 한다. 노년에 손주를 돌보는 이른바 하빠 부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다.

며칠 후, 오랜만에 만난 지인 역시 요즘 손녀 보는 재미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신다고 한다. 부, 명예와 상관없이 이것이야말로 삶의 행복이라며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손녀를 돌본다. 당연 전업주부인 며느리에게도 육아 휴식이 필요하다며 그 시간엔 일절 약속을 잡지도 않고 오로지 손녀에게 올인을 하신다는 말씀에 의아스럽긴 하다.

손녀를 향한 할아버지의 화수분 같은 사랑은 치질 않는다. 이제 막 뒤집기를 하고, 닥치는 대로 손으로 잡아당겨 입으로 가져가는 호기심 많은 아기,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지인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정작 자신의 아이를 키울 때는 어떻게 키웠는지 까맣게 잊었는데, 손녀의 눈빛을 보고 옹알이를 들으면 무엇을 말하는지도 알아듣는다 하신다.

노비에게 출산휴가를 준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백성을 어여삐 여기시고 많은 업적을 남기신 세종대왕, 사대부 집안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천한 노비에게 출산휴가를 명하자 신하들의 항소가 끝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사대부집 마님이 출산을 하면 노비들이 시중을 들어주지만, 정작 노비들이 출산을 하면 그 누구도 돌봐 줄 사람이 없다. 이에 출산을 한 남편에게도 산모를 보살펴 줄 출산휴일을 명 하노라'하셨다. 끝없는 항소에도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지혜롭고 현명한 출산휴가제도는 이어졌고 그 시절 엄청난 개혁이었다. 그렇게 예로부터 아기 탄생은 모두에게 축복받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가슴속에 한 줄금 바람이 인다. 인공위성이 날아다니고 온갖 인공지능이 보급되고 있는 오늘날, 선진국 대열에 있는 시대이지만 현실은 불안한 마음에 출산휴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외려 결혼이나 임신만 해도 사표를 종용할 수가 있기에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을 늦추는 경우가 많다. 지인의 며느리 역시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사직한 전업주부다. 현실은 정당하게 출산휴가를 사용해도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가 없다. 경력단절 그리고 승진의 염려로 마음 편히 출산 및 아이를 양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결혼과 출산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요즘, 손녀 사랑에 홀리어 행복하다는 지인은 아주 특별했다.

무섭게 소용돌이치며 발 빠르게 변하는 사회 질풍노도와 같은 세상에 연애, 인간관계, 결혼, 출산을 포기한 `4포 세대'의 절규가 이어지고 있다. 스스로를 연애·인간관계·결혼·출산을 포기한 `4포 세대'라고 부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결혼보다는 소소한 일상에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나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 더 큰 행복이라 말한다. 그날 밤, 괜스레 뒤척여진다. 매일매일 버라이어티한 세상, 혼기에 찬 아들 생각은 좀 다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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