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자유한국당이 싫었다
그냥 자유한국당이 싫었다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8.06.1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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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무서웠다. 노란색만 달고 나오면 그냥 다 찍어줬다”. 2004년 4월 15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직후 시행된 17대 총선에 출마했던 당시 충청권 자민련 후보자들의 말이다. 실제 그랬다. 당시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은 물론 충청권의 맹주를 자처한 JP(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조차 참담하게 패했다.

이른바 열린우리당의 상징인 노란색을 빗댄 `황색 깃발 돌풍'으로 정치권에서 회자하고 있는 당시 상황은 한나라당과 자민련, 새천년민주당 등 야권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개입 발언 등을 문제 삼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2004년 3월 12일)에서 비롯됐다.

때마침 그해 총선은 한 달 후 헌법재판소가 탄핵 소추안 심리를 진행하던 도중에 치러졌다. 결과는 여당(열린우리당)의 완승이었다. 4년 전 16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전신이던 민주당은 115석을 차지하는데 그쳤으나 17대 총선에서는 무려 152석을 차지, 과반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정국 주도권을 잡게 됐다.

헌법재판소 역시 총선이 끝난 후 5월 14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기각 결정함으로써 야권의 `반란'은 단 두 달 만에 `지리멸렬하게' 끝나고 말았다.

실패로 끝난 이 쿠데타는 성난 표심이 어떻게 정치에 투영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한국 정치사에 남게 됐다.

그로부터 14년 후, 지난 13일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에서 똑같은 양상이 벌어졌다. 아니, 똑같은 것이 아니라 더 심했다. 그야말로 `꽂기'만 하면 됐다.

사상 초유로 여당이 전국 광역단체장 17석 중 14석을 거머쥐었으며 국회의원 재보선에서도 11석 중 10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기초, 광역의회 역시 여당이 독주했다. 대전의 경우 광역의회 지역구 의석 19석을 민주당이 싹쓸이했으며 세종시 역시 마찬가지다.

천안에서도 광역의회 10개 선거구 중 10석 전석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충청권 뿐만 아니라 전국이 대구·경북을 빼고는 다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엊그제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박혁 연구위원이 `6·13 지방선거 결과의 5대 포인트'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시민권으로 자리 잡은 투표권', `지역주의 해체', `색깔론 소멸', `문재인 국정 밀어주기', `겸손한 중심 정당, 혁신해야 할 보수 야당'을 꼽았다.

그중 다섯 번째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이번 민주당의 압승에 대해 “당의 능력과 성과라기보다는 보수세력의 지리멸렬에 따른 반사이익이 있었다”고 실토하며 “출범 1년차의 `밀회' 선거였다는 점에서 자만이나 패권적 태도는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우왕좌왕이다. 중도 보수층까지 등을 돌렸음에도 아직껏 통렬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다음 총선이 불과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지방선거 때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2년 후 총선 때도 그대로 유지된다면 전체 지역구 253석 중 50석도 못 건질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유권자들의 표심이 무언지 아는지나 모르겠다. 보수가 싫은 게 아니라 자유한국당이 싫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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