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보수정당
죽어야 사는 보수정당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6.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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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국민은 보수정당을 지지하지 않은 데 그치지 않고 격렬한 분노를 담아 퇴장을 명령했다. 야당이 처참하게 패배한 이번 지방선거를 놓고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민으로부터 탄핵을 당했다”고 했다. 정확한 평가이다. 공인이 탄핵을 받았으면 직위에서 물러나야 한다. 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정당이 재기할 길은 하나다. 구성원들이 당을 해체하고 정치무대를 떠나는 것이다. 의원 총사퇴가 민심에 복종하는 길이다. 하얀 백지에 보수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야 한다. 지금 보수정당에는 현 위기에 대처할 인물도 세력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들보와 서까래 몇 개 바꾼다고 될 일도 아닐뿐더러 바꿀 서까래도 없다는 얘기다. `완전 철거 후 재건축'이 지금 보수정당이 수행할 미션이다.

경북 구미시의 선거 결과는 야당의 현주소뿐 아니라 가야 할 길까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구미는 박정희의 고향으로 보수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선거 때면 구미역을 박정희역으로 하자는 따위의 공약이 난무했던 곳이다. 새마을운동 테마공원과 박정희대통령역사자료관 등 10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박정희 추념사업들이 전개되는 곳이다. 그동안 진보정당은 후보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고전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구미는 이번 선거에서 박정희에게 등을 돌렸다. 민주당 후보가 시장에 뽑혔다.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 7명이 모두 당선된 것도 대이변이다. 비례에서도 민주당 후보 2명이 시의회에 입성했다.

반세기 걸쳐 보수의 아성이었던 구미의 정치권력이 한순간에 진보로 넘어간 이유는 간단하다. 유권자들이 신물 나는 박정희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이념적 구호에 밀려나 방치됐던 현실로 복귀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파탄 난 지역경제가 이슈로 부각됐다. 과도한 박정희 추념사업에 따른 재정난, 산업단지의 장기 불황, 아파트 과잉 건립 등이 도마에 올랐고, 유권자들은 장기 집권했던 한국당에 엄하게 책임을 물었다. 수틀리면 좌우를 나누고 빨간 딱지를 붙이는 방식의 시대착오적 전술에 대한 심판도 동시에 이뤄졌다. 보수정당의 재건은 구미시민들이 보낸 이 메시지에서 시작돼야 한다.

다음에는 장벽을 거두는 것이다. 한국당의 이철우 경북지사 당선인은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한국당 말만 들으면 등을 돌리더라”며 “충격과 절망을 느꼈다”고 했다. 보수정당이 미래 세대의 외면을 받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 현상을 심각한 숙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노령세대의 표에 의지하려는 구차한 셈법이 대책이라면 대책이었다. 그 대책도 이번 선거에서 바닥을 드러냈지만 말이다.

가장 시급한 청년문제인 일자리 정책에 대한 접근만 해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과 최저임금 인상 등 정책에 대한 비판에만 열을 올렸지, 공감할만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주의가 도래했다고 목청을 높이고, 일자리는 정부가 아닌 기업이 창출해야 한다며 규제완화만 외쳐댄 것이 전부였다. 무능의 하수가 무책인 것이다.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최악의 실업난에 신음하는 20대의 등에 비수를 꽃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국당은 신규 직원 90% 이상이 청탁으로 입사한 전대미문의 사건에 일말의 책임감도 표하지 않았다. 책임은커녕 연루된 자당 의원들의 방패막이가 되기에 급급했다. 젊은 유권자들의 분노를 자초한 꼴이었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선거연령 상향을 거부하는 졸렬한 방식으로 미래세대와 담을 쌓아왔다.

사망선고를 받은 한국당은 의원 전원이 차기총선 불출마를 선언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도 중진은 물러난 홍준표를 탓하고, 초선은 중진에 책임을 묻는 한심한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보수 재건의 싹수가 보이지 않는다. 혁신비대위를 만들어봤자 이런 한가한 인식 속에서 성과를 낼 리 없다. 당을 뿌리째 뽑아내고 새로운 종자를 파종해야 한다는 통렬한 자각 없이 새로운 보수의 건설은 요원한 숙제일 뿐이다.

20~30대의 등을 되돌리게 하려면 그들이 경청할만한 정책, 여당을 압도할 정책을 발굴하는 것이 우선이다. 해법은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세대교체이다. 역량있는 젊은 피의 영입은 수혈이라는 시술이 아니라 낡은 혈관을 통째로 들어내 교체하는 대수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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