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는 것
다르다는 것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6.1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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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현대의 과학 수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교하다. 지문 하나만 남겨 놓아도 범인을 찾을 수 있고, 머리카락 한 올만 있어도 유전자 감식을 해서 범인을 찾아낼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범인의 발바닥에 묻어 있는 흙만 분석해도 흙의 조성과 각 조성의 결정구조, 그리고 그 흙에 있는 미생물의 종류를 알아낼 수 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언제 어디에 갔는지,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낼 수 있다.
과학수사팀이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첨단과학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기어코 범인이나 사건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그 내면에는 아마도 “모든 만물은 다르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만물이 다르다는 말은 세상 만물은 자기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는 말이다. 모든 만물은 그 자체로 이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고, 더 나아가 모든 존재는 존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구에는 수많은 종의 식물과 동물이 존재한다. 종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살아가는 생존과 번식 방식이 다르다. 같은 종이라도 자세히 보면 외모는 물론 생리적, 유전적 특성도 다르다. 어디 생명체만 그런가?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도 같은 것은 없다. 미세먼지 한 알도 공장에서 나온 것 다르고 자동차에서 나온 것 다르고 사막에서 나온 것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나라 미세먼지가 중앙아시아의 사막에서 날아왔는지 중국의 공장에서 왔는지 우리나라 자동차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아낼 수 있다.
그 많고 많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다르고 자기만의 특성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왜 모두 다를까?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다른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수없이 많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원자들도 서로 완전히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산소원자라도 전자의 수가 다를 수 있고, 전자의 수가 같아도 전자들의 에너지 상태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원자들은 모두 동일하다고 일단 가정해 보자. 동일한 원자들로 만들진 물체는 모두 동일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같은 재료, 예컨대 같은 플라스틱으로 온갖 종류의 그릇을 만들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장난감을 만들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같은 재료로도 수없이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이 동일한 원자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은 아무리 작은 물체, 그것이 비록 먼지 알갱이일지라도 수많은 원자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래를 한 줌 쥐고 넓은 종이게 가만히 쏟아 보아라. 모래가 분포된 어떤 문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모래를 모아서 다시 종이에 쏟아 보아라. 조금 전에 생긴 문양과 같은가? 전혀 다르다. 얼마나 많이 해 보면 동일한 문양이 만들어질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이와 같이 구성하는 개체의 수가 많으면 동일해지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갖는 것은 각 개체가 수많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개체 중에 사람만큼 복잡한 존재도 없을 것이다. 60kg인 사람이라면 어림잡아도 한 사람의 몸에는 개가 넘는 원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 사람이 저마다 독특한 것은 비단 원자의 수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의 두뇌는 1000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세포들이 연결되어 있는 방식의 수는 이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동일한 두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까무러치게 놀랄 일이다. 사람은 고사하고 미물에서조차 동일한 것은 없다.
동일한 존재가 없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깊은 의미를 내 작은 머리로는 알 수가 없지만, 다르다는 것은 귀하다는 것이고 나아가 존엄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이 자기만의 고유한 특성을 갖는다는 것은 만물에 내려진 축복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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