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가 되어
민들레가 되어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8.06.1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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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안희자 수필가

 

산기슭 자드락길로 접어들면 민들레꽃이 지천이다. 잡초 속에 잔잔하게 흔들리는 이 꽃은, 모두가 땅에 바짝 붙어 피어 있다. 허리 굽히고 무릎을 꿇어야 볼 수 있는 꽃, 새벽이슬에 세수하고 햇살에 반짝이는 노란 꽃무리들이 절간 앞을 지키며 공손히 머리를 조아린다.
모처럼 청양군 칠갑산 자락에 있는 작은 사찰을 찾았다. 시골에 있는 이 사찰을 드나든 지가 20여 년을 넘어섰다. 절의 규모도 아담하고 스님 성품이 온화할 뿐 아니라 사찰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도 맑아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푸근한 느낌을 받는 곳이다. 먼 곳에 있어 자주 찾아오진 못하지만 절에 큰 행사가 있을 때나 마음이 번잡할 때면 들르곤 한다.
법당에 들어서자 아침예불이 시작되었다. 잠자는 생명을 깨우느라 방망이에 힘이 실렸는가. 적막한 아침을 깨우듯 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가 산사(山寺) 뜰 안에 가득 고였다. 화답하듯 처마 끝의 풍경소리가 청아하게 울린다. 신도들이 저마다 부처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절을 올린다. 등 굽은 저 노(老)보살은 무슨 소원을 비는 걸까. 쓰러질 듯한 몸은 법당의 향불처럼 살아 다시 일어나 보살의 기도는 끝없이 이어졌다. 저마다 사연을 담아 누군가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그들 모습이 민들레를 닮았다.
나도 그랬다. 인생길은 꽃길만 있는 게 아니다. 피할 수 없는 길이라서 걸어야 한다. 흙먼지 날리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과 함께 위기의 벼랑 끝을 만나면 삶의 뿌리까지 흔들렸다. 가족들의 병고(病苦)가 생사를 다툴 만큼 위급했고, 때로는 물질적 고통이 그러했다. 삶이 곡예를 하듯 위태로울 적마다 이 길을 오가며 얼마나 위로를 받았었던가. 그때마다 스님은 나약한 나를 위해 기도했고, 간절한 순간에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
불상 앞에 섰다. 한 송이 민들레가 되어 두 손을 모으고 절을 올린다.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자신을 한껏 낮추고 상대를 받들고 모신다는 뜻이다. 뒤로 물러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순간은 부자건 가난하건 신분이 높든 낮든 모두가 신 앞에서 평등할 뿐이다. 무릎 꿇고 절을 올리는 일은 자신을 버리는 연습이 아닐까. 번뇌도 업이고 병고도 업이니 알량한 자존심은 버리고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채워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원도 부질없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 무탈하고 그저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신앙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마음 다스리기가 아닌가.
절에서 사람들이 합장하고 절을 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그들이 심오한 경전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극진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한없이 낮춰 절하는 모습은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만, 그들이야말로 가장 낮은 곳에 핀 성스러운 민들레 꽃무리다.
절간 앞에 내려앉아 지천을 노랗게 물들인 민들레는, 짓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은 무엇에 있는 걸까. 여린 민들레는 분명 저녁 예불소리에 잠이 들고, 새벽예불 목탁소리에 깨어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을 터이다. 그동안 불심이 돈독해진 꽃은 홀씨가 되어 날아간다. 나 또한 불심이 깊어지면 민들레 홀씨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까. 산사를 내려오면서 민들레의 품결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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