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파도를 타야 닿을 수 있는 곳
수필가파도를 타야 닿을 수 있는 곳
  • 최명임 수필가
  • 승인 2018.06.1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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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명임 수필가
최명임 수필가

 

사공이 대담하게 밧줄을 풀자 뭍은 `나는 몰라-'하고 손을 놓아버린다. 애면글면 살아온 뭍이 멀어진다.
새처럼 나는 재주가 있으면 몰라도 파도를 타지 않고는 닿을 수 없는 곳이다. 거저 얻어낸 행복이 없듯이 남동풍을 맞받으며 출항한 배는 생의 한바다를 가르는 장정의 뚝심으로 서너 시간을 발버둥쳤다. 가려는 그곳이 무릉도원인지도 몰라.
홍도는 비에 젖은 채 수굿한 모습으로 우릴 반긴다. 기암괴석이 심해에 뿌리를 내리고 사철 푸르기만 할 것 같은 나무들이 섬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한바다를 경작하며 사는 이들은 뭍사람보다 가슴이 한정 없이 넓으리라.
가이드는 구경할 것이 많다고 미리 호기심을 불러낸다. 배가 섬 언저리에서 나비처럼 너울거린다. 파도를 타느라 구역질을 하는 아낙은 절경을 놓쳐 버렸다. 다시 올 때는 너울성 파도에 대처하는 법도 익혀야 하리라. 몇 미터까지 오르는지 모를 파고보다 더 높이 올랐다, 한없이 물속으로 꺼지는 듯한 반복적 위협에 아낙네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파도와 물결의 의미를 아느냐고 물었다. 파도는 파도이고 물결은 물결이지. 아니다. 파도는 파란이고 물결은 아름다운 파동이다. 이 바다의 파도를 모르는 뭍사람에게 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녀자들의 비명을 엄살이라 눌러 버린다. 걸핏하면 사는 것이 버거웠노라고 하소연하는 내게 그것 순전히 엄살이라고, 한방 단단히 먹이는 것 같아 부끄럽다.
사람들이 갑판에 나가 사진을 찍는다. 삼천 원짜리 비옷으로 남동풍을 받아 낼 준비를 하였으니 가소롭다는 듯 훌렁 벗겨 버린다. 남동풍은 기어코 비를 몰고 오는데 왜 이런 날을 잡았느냐고 가이드가 넉살을 떤다. 당신의 선택이라고 일침을 놓고 섬 날씨는 변덕이 죽 끓듯 하니 기다려보자고 한다. 그러니 주어진 삶도 가타부타 말고 살아보라는 말인가. 마도로스로 살아온 그가 바다를 떠날 수 없어 이 배에 올랐다고 했다. 자글자글한 주름에서 삶의 궤적을 읽어보려 애를 썼지만, 뭍사람이 알 리가 없지. 부디 돌아가면 이놈의 비 때문에 그저 그런 곳이었다고 전하지 말고 아름다운 홍도 이야기를 잘해달라는 직업성 대사에 한바탕 웃었다.
기생 홍도와 연관이 있느냐는 뜬금없는 질문에 소동이 일었다. 없을 리야 없지. 섬은 홍도 씨처럼 파랑주의보에 밤을 지새운 날들이 수태 많았을 거다. 홍도 씨는 고립된 저의 섬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두 이름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바다를 향해 거꾸로 자라는 소나무를 보라고 한다. 일제히 눈길이 쏠렸다.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리라. 예스란 말을 노상 뇌까리는 무리 뒤에서 오로지 바다를 향한 마도로스의 위대한 향일성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애써 보라는데 비 탓인지 볼 수가 없다.
홍도의 나무는 단풍이 들지 않는다. 낙화가 이루어져야 봄이 오는데, 사람도 고비 늙으면 좋을 것이 없다는데 사철 푸르고 싶은 것은 욕망이거나 집착이 아닌가. 한겨울 나목과 함께 서러운 한기에 시달리는 섬을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오한이 나는 몸을 누였다. 파도를 넘어온 피로가 와락 쏟아진다. 여기가 무릉도원일까. 긴가, 민가. 비몽사몽 중에 나의 도원을 찾다가 잠이 들었다. 배를 탄 듯 물 위에 뜬 듯 밤새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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