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땅
순수의 땅
  • 류충옥 수필가·청주 경산초 행정실장
  • 승인 2018.06.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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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 경산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 경산초 행정실장

 

하늘 반, 땅 반. 가도 가도 끝없는 대지와 맞닿은 하늘만 있을 뿐이다. 높지 않은 바위산들은 모래 먼지에 덮여 빛바래고 먼지 쌓인 골동품처럼 소외되어 있다. 억센 풀이 드물게 있는 초원 위에는 이따금 씩 말 떼, 양 떼, 소 떼들만이 유유자적 거닐고 논다. 야생 사슴들은 몇 마리씩 떼를 지어 달리기 시합에 전력 질주를 한다. 간혹 먹구름의 그림자만이 잠시의 그늘을 만들어 줄 뿐 태양 볕 아래 숨을 곳이라고는 없다. 그나마 거스를 것 없는 바람이 이들의 더위를 식혀 줄 뿐이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넓은 하늘엔 돛단배처럼 떠다니는 흰 구름이 펄쩍 뛰면 잡힐 듯이 가까워 보인다.

몽골 고비사막의 풍경이다. 지금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고 없는 공룡이 천지를 누비며 다녔고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았던 곳. 한국인과 너무 흡사한 몽골인들은 부족연합형태의 유목민으로 살다가 칭기즈칸 시대에 국가로 자리 잡고 세계를 제패하며 살기도 했다.

고비사막은 물이 귀하다. 지하수가 나오는 곳에 가서 물을 길어다 사용을 해야 하기에, 씻을 때도 바가지로 물을 떠서 작은 통에 부으면 물이 아주 조금씩 나와서 최대로 아끼며 물을 쓰게끔 만들어 놨다. 연 강수량이 300mm 정도라고 하니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인 1,277mm의 1/4 정도이다. 아끼지 않는 것을 `물 쓰듯 펑펑 쓴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물을 마음껏 사용하는 우리나라는 얼마나 혜택받은 땅인가!

이곳은 전기 또한 귀하다. 게르라는 이동식 집에도 흐린 전기가 들어오긴 한다. 그러나 밤 11시가 되면 국가에서 전체로 불을 끈다. 그러면 땅은 온통 까맣게 잠들고 하늘의 별천지 세상이 열린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는 은하수도 보였고 밤하늘의 별들도 크게 보였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는데, 이곳에 오니 별들은 여전히 생성과 죽음을 맞이하며 우리와 같이 살아있었다.

도로엔 이정표도 거의 없다. 길은 초원 위에 새겨진 다른 차의 바퀴 자국을 따라가는 것이 곧 길이다. 길을 잘 모를 때는 거의 한 시간 만에 나타나는 게르에 가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며 가야 한다. 그래서인지 낯선 사람과도 금방 친근하게 대화를 하는 것이 이들에겐 익숙해 보인다.

화장실도 우리나라 재래식 화장실과 같다. 그나마도 작은 마을이나 게르가 있는 곳에나 가야 있고, 넓은 초원에서는 그야말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문명의 때가 전혀 범접하지 않은 태초의 땅.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 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라던 이육사 시인의 `광야'가 연상케 되는 곳. 들판에 굴러다니는 소똥, 말똥도 주워다 겨울엔 난로 연료로 사용하는 곳이다.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인해 오존층 파괴 및 대기오염 등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같은 지구에 살면서 처녀성(處女性)을 간직한 채 자연 그대로를 온전히 지키며 사는 곳이 있었다니, 편리만을 추구하며 살아온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였다. 자연을 보전하면서도 편리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 획기적인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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