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다는 것
같다는 것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6.07 2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영화 스타트랙에는 원격이동이 단골로 등장한다. 원격이동이란 물체가 먼 곳으로 전송되는 현상을 말한다. 팩스로 그림이나 문서를 전송하는 것과 같이 실물을 전송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론 지금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도 3D 프린트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제품을 프린트가 프린트해 내듯이 제조해내는 장치이다. 물론 이것을 전송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만약 미래에 어떤 물체의 조직을 완전히 파악하여 조직 전체를 정보화할 수 있다면 그 물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전송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전송된 정보를 사용하여 역으로 조립한다면 어떤 물체를 전송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물체가 아니라 한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을 정보화할 수 있다면 사람을 전송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사람에 대한 `모든 것',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 몸을 이루는 모든 원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람의 생각과 기억도 알아낼 수 있을까? 아직은 이 질문에 답하기에는 인간이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적다.

하지만 상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만약 기억이나 생각이라는 것이 뇌신경 세포에 들어 있다면, 뇌신경망을 그대로 복제하면 기억이나 생각도 자동으로 복제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이 두 사람이 정말로 동일할까? 동일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수학공식에는 반드시 등호(=)가 등장한다. 좌변과 우변이 같다는 뜻이다. 어떤 면에서 수학이란 `같음'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대상이 `같다'는 것을 확정하는 것이 가능할까?

두 물체가 있는데 색깔이 같지만 모양이 다르면 둘은 다른 물체다. 색과 모양이 같아도 크기가 다르면 다른 물체가 된다. 색, 모양, 크기가 같아도 재질이 다르면 다른 물체다. 이렇게 수많은 특성이 같아도 한 가지만 다른 특성이 있어도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두 물체가 같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능할까? 같은 두 사람이 가능할까? 육체를 이루는 모든 원자가 같으면 같은 인간인가? 육체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억까지 같으면 같은 인간일까? 육체와 정신은 인간의 `모든' 것인가? `같음'을 증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문제는 과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논리의 문제이자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같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아직 미해결의 문제다.

이 같음의 문제는 미래에 인간의 자아 정체성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지구에서 어떤 한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적 정보를 안드로메다에 전송하고, 안드로메다에서는 이 전송자료에 입각하여 그 사람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마치 문서나 그림을 팩스로 보내서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팩스를 보내도 원본 문서는 남아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원본과 복사본 두 문서가 만들어진다. 매우 정교한 팩스장치라면 원본과 복사본을 구별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다.

미래에 이런 원격이동 기술이 실행된다고 했을 때, 지구에 있는 원본 인간과 안드로메다에 있는 복사본 인간은 정말 같을까? 지구의 원본과 안드로메다의 복사본은 모양이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구성되어 있는 모든 원자와 그 구조도 동일할 것이다. 몸의 모든 기관은 물론, 뇌세포까지 동일할 것이다. 남은 문제는 그 복사본의 기억이다. 복사본의 기억도 원본의 기억과 같을까? 이것은 기억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로 돌아간다. 이것도 아직 인간은 잘 모른다.

같음에 대한 논의는 이 정도로 하고, 지구의 원본과 안드로메다의 복사본이 만난다고 생각해 보자. 이 둘이 “아버지, 어머니, 그간 강령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하면 부모님은 어떨까? 자식이 두 배로 늘어났으니 기분이 좋을까? 원본과 복사본을 앞에 둔 애인의 심정은 어떨까? 나와 똑같은 또 다른 나를 보는 내 기분은 어떨까? 미래는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이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