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을 정리하며
서랍을 정리하며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8.06.0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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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박명애 수필가

 

옷장 정리를 한다. 세탁소에 맡길 옷과 손빨래 가능한 옷들을 분류한다. 사실 세탁소에 맡기는 옷들은 한 번이나 두 번 입은 옷들이 태반이다. 중요한 행사나 외부 강의 때 한 번씩 입은 옷인데 평소에는 불편해서 잘 입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편안한 옷을 즐겨 입다 보니 정작 신경 써 고른 좋은 옷은 모셔두고 저렴하게 구입한 옷들을 더 자주 입는다. 모셔둔 옷들이 쌓이다 보니 옷장은 늘 만원이다. 버리려다 아까워 다시 세탁해 넣기를 매년 반복한다.

서랍장은 반대다. 너무 자주 입어서 낡아 버려야지 하면서도 또 개켜 넣은 옷들이 대부분이다. 한 번만 더 입고가 매년 반복된다. 맨 아래 칸 서랍은 손수건이 가득하다. 오래되어 빛바랜 손수건부터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손수건까지 사계절 손수건들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장미꽃이 수 놓인 손수건은 지난 주말 딸애가 두고 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불편하다고 치마도 입지 않던 선머슴 같던 아이가 다시 숙녀가 되어 가는지 아기자기 예쁘다. 내 손수건들은 새것이나 다름없다. 선물로 받은 손수건이 대부분이다. 선물한 사람들의 개성이 느껴진다. 화려한 꽃무늬가 프린트된 것도 있고 어떤 건 심플하고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가 깔끔하다. 하얀 바탕에 흰 장미가 수 놓인 손수건도 있고 미술관에서 사온 명화손수건도 다수다.

딸애가 쪽물을 들여 만들어준 남편의 손수건은 깊고 푸른빛이 바래 여린 하늘빛이 되었다. 얇고 부드러운 면을 조물조물 주물러 빨 때마다 그의 시간을 생각한다. 계절에 관계없이 땀이 많은 사람의 수고로운 시간을 엷어진 빛에서 느낀다. 남편의 손수건을 보면 가끔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떠오른다. 아버님은 어떻게든 자식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쓰셨던 것 같다. 일상에서도 손수건처럼 반듯하셨다. 담배를 피우셨지만 한 번도 뜰이나 마당에 가래를 뱉으신 적이 없다. 담뱃값 속 은박지를 모아 두셨다 가래를 싸서 꼭 쓰레기통에 넣으셨다. 그런 아버님 저고리 안주머니엔 늘 손수건이 옷핀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평소 자식들이 드린 용돈을 손수건으로 단정하게 접어 싼 뒤 꼭 저고리 안섶에 달아두셨는데 늘 저승 가는 길 노잣돈이라고 하셨다. 저고리를 갈아입으시면 제일 먼저 노잣돈부터 챙기셨는데 돌아가시던 해 봄 그 손수건이 한번 풀렸다. 내게 용돈으로 쓰라며 적지 않은 돈을 내어 주셨다. 일부는 노잣돈으로 남겨 두었다시며. 그리고 기억을 잃으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처음 알았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걸. 다 비우고 가는 게 삶임을. 경황이 없어 그때 아껴두신 노잣돈은 손수건과 함께 어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손수건은 다가오는 시간을 인정하고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부적 같은 게 아니었나 싶다.

헤르타밀러의 소설에서 손수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을 견디게 하는 희망이었으며 영화 <인턴>에서 손수건은 어른이 청년에게 건네는 진정어린 위로였다. 현충일과 6.25가 나란히 있는 유월은 그리움으로 눈물에 젖는 달이기도 하다. 수많은 손수건이 종전을 넘어 단절되었던 시간만큼 고인 눈물을 서로 닦아줄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음 좋겠다. 봄을 정리하고 여름 손수건을 꺼내려다 공연히 생각이 많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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