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 현수막
네거티브 현수막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8.06.04 2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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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 지난 5월 31일 아침 천안. 출근길, 등굣길로 나서던 직장인, 학생들이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졌다.

버스를 타려다, 승용차를 몰고 가다, 또는 길을 걷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괴(怪)' 현수막을 보았기 때문이다. 현수막에 쓰인 글귀는 `구본영 뇌물수수 혐의 검찰 기소, 6월 20일 재판'. 아니 구본영이 누군가. 바로 우리 시장님 아니던가.

이 현수막은 공식 선거일이 시작된 그 날, 도지사·광역·기초의원 등 다른 지방선거 입후보자들의 현수막과 함께 시내 곳곳의 차량 통행량이 많은 요지에 내걸려 지금까지 게시돼 있다.

반향은 꽤 컸다. 눈에 잘 띄는 파란 색깔의 현수막에 현직 시장으로 재선에 도전한 구본영 후보의 범죄 혐의가 적시되고 곧 재판이 시작된다고 하는 글귀가 쓰여져 있으니…. 어떤 이는 불법 현수막이라며 선관위에 신고한 이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현수막은 불법일까. 기자들도 의아해 했지만 정답은 `아니올시다'다. 이 현수막의 왼쪽 하단 부분에 보면 선관위의 검인이 찍혀 있다. 선관위가 승인을 해줬다는 뜻이다.

선관위에 물어봤더니 `현수막에 게시된 내용이 허위 사실이 아닐 경우에는 말릴 방법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공직선거법 제58조는 선거운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당선되게 하거나, 당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경쟁자가 당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선거운동이기 때문에 현수막에 적시된 내용이 허위사실만 아니면 허용이 된다는 얘기다.



# “네거티브 캠페인(Negative Campaigning)은 유권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한 안전 장치이자 건강한 민주정치의 토양이다”. 미국의 선거 전문기자 데이비드 마크의 주장이다. 그는 저서에서 네거티브의 순기능을 이렇게 역설한다. “네거티브는 (후보자에 대해) 진위를 판단하고 옥석을 가리는 데 가장 유용한 장치다”.

정치 커뮤니케이션분야 권위자인 김창남 경희대 교수는 저서(네거티브 캠페인과 위기관리, 2014)에서 네거티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네거티브는 상대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 정책 등을 공격하는 선거운동이다. 상대의 신뢰성을 저하시키고 지지세력을 약화시켜 승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면서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이 부족하거나 도덕성이 결여됐을 때 그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고 정당하게 비판하는 것은 선거에선 없어서는 안될 정상적인 캠페인이다”라고 강조한다.

구본영 후보의 범죄 혐의와 재판 일정을 적시한 현수막이 천안시내에 내걸리자 더불어민주당 충남도당이 지난 1일 흑색선전을 중단하라는 논평을 냈다. 그러자 박상돈 자유한국당 후보 캠프가 기다렸다는 듯 되받았다. “어디 한 군데 거짓이 있는지 밝혀달라. 구본영 후보가 구속됐다가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헛소문이 유포돼 유권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사실에 근거한 내용만 게시했다.”

이후 사흘이 지났는데 네거티브를 당하고 있는 민주당 측이 잠잠하다. 호상간 공방이 되레 상대에게 유리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확산할 것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천안시민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 사상 초유의 네거티브 현수막. 그 성공 여부를 떠나 씁쓸하다. 축제가 돼야 할 선거판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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