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을 받다
절을 받다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8.06.0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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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등나무 그늘 아래 앉아 바라보는 풍경이 한가롭다. 공원에는 들꽃의 향연이다. 토끼풀 꽃이 지천이고 노란 민들레 꽃과 씀바귀도 꽃을 피웠다. 반짝이는 오월의 햇살을 가르고 명지바람이 목덜미를 간질인다. 저만치, 풀밭에 앉아 진한 향의 들꽃다발을 만들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이 그림 같다.

공부방 수강생들과 한적한 공원으로 야외수업을 나왔다.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잠시 여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머릿밑이 희끗희끗한 여인이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들꽃다발을 내민다. 영문을 몰라 같이 무릎을 굽혔다. 환갑이 지난 그녀는 그동안 글공부를 잘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허리를 굽히고 땅을 짚은 손에 머리를 대고 절을 한다. 느닷없는 행동에 몹시 당황이 되었다. 맞절을 하자 수강생들의 웃음보가 터지고 만다.

나만의 책을 펴내기 위해 참여하는 수강생들은 주로 나이 많은 여인들이다. 대부분 가슴 속에 불덩이 하나씩 담고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나는 전문적인 지식보다 그들의 응어리진 삶을 풀어내게 하는데 시간을 배려한다. 차마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하지 못하고 꼭꼭 여며둔 사연들을 꺼내 놓으면 같이 울고 웃는 일이 허다하다. 강사와 수강생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들어주고 공감하고 위로하다 보면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글을 쓰는데 재미를 붙이기도 한다.

강사의 입장에서는 한 권의 책이라도 더 발간해야 실적이 올라가지만 시간이 지체되어도 글을 쓰면서 상처가 치유되어가고 자신감도 생겨 표정이 밝아지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녀도 그랬다. 몇 년 동안 글을 쓰면서 힘든 시기를 넘기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삶의 질이 높아졌다. 오히려 내가 많은 걸 배우는 입장이 되었다. 내 앞에서 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숙일 일이 결코 아니다.

절을 하는 사람과 절을 받는 사람과의 관계는 상·하의 관계다. 공적으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신분이 높거나 낮은 자다. 사적으로는 항렬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윗세대와 아랫세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절을 필요로 하는 인간관계 뒤에는 생활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 은혜에 대한 감사의 감정이 개재되고 그것을 절이라는 행위로 나타내는 데 나는 절을 받을 만큼 인간적이거나 학문적으로 존경받을 만큼 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서 몹시 민망스럽다.

그녀처럼 고운 눈빛으로 절을 한 적이 있었던가. 낳아서 길러준 부모의 은혜, 스승에게는 바른길로 이끌어 주고 삶의 지혜를 깨우쳐준 은혜가 커도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절을 올리지 못했다. 부끄럽다.

건네준 들꽃다발의 진한 향기가 무척 좋다는 핑계로 한참을 고개를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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