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집
살고 싶은 집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8.06.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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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단독 주택 매물을 찾아봤다. 집을 장만할 계획이 있어서라기보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 건지 자신도 잘 몰라서 가끔 여러 집을 기웃대며 구경하는 것이다. 가격도 만만하고 건물도 튼튼해 보이고 앞에 마당도 좀 있는 집이 있었는데, 1991년에 지어진 것이다. 외부는 빨간 벽돌재이고 내부의 천정과 아치형 벽에까지 나무로 덧대어져 있어 집 지을 당시 건축가 또는 소유주가 얼마나 심사숙고했을지, 그 정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건물 안팎의 살림이 단정하여 상당히 깨끗한데, 리모델링만 하면 상당히 괜찮을 거라고 광고하고 있었다. 내 나이보다 훨씬 젊은 스물일곱 살 된 건물인데, 벌써 고풍스러운 느낌이라니. 요즘 여기저기 새 아파트 모델 하우스와 분양 소식을 들었는데, 그것도 눈 깜짝할 시간 후엔 이렇게 낡아질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충주 관아골에 있는 한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건물로, 1933년 신축되어 해방 후엔 조선상호은행, 한국상공은행, 한국흥업은행, 한일은행의 충주지점 건물로 쓰였으니 우리 근대사의 현장이었던 셈이다.

이름도 생소한 등록문화재라는 제도는 근대사의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 지역의 역사·문화적 배경이 되고 기술 발전이나 예술적 사조 등 그 시대를 반영하는 데 가치가 있는 것 등을 지정하여 보호하고자 2001년에 만들어졌다.

이 건물은 1930년대에 각 지역에 세워진 금융기관의 전형인 목골조 스터고 마감의 본관 건물은 지역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식민지배의 권위를 내세우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지붕은 만사르 지붕으로 되어 있고 아르데코 분위기의 장식과 수직으로 긴 창이 1930년대에 도입되기 시작한 모더니즘을 보여주기도 한다.

노후화되어 철거될 위기에서 그 가치가 새로이 조명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들도 시간이 지나 30년, 50년, 100년이 되어 옛것으로서 기념할 만한 건축물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현장이 미래의 문화재이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1990년에 지어졌다. 30년만 되면 아주 낡은 집이라고 가치가 낮지만,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는 충주에도 이런 신식의 고층아파트가 지어지는구나 하며 모두가 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우리가 쓰는 모든 물품은 예전보다 더 좋은 재료로 더 튼튼하게 만들어졌을 텐데 그 수명은 더 짧아진 듯하다.

조금 낡으면 곧 새것으로 바꾸고 싶으니 말이다. 그리고 경제 활성화의 이름으로 그러라고 서로 부채질하는 세상이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어떤 큰 물결, 인식의 물결, 가치의 물결이 삶의 순리인 듯 생각되기도 하고, 그 순리를 재빠르게 인지하면 부와 안락을 쟁취할 수도 있다. 어떤 성공담을 들으면 내가 재주가 없는 건지, 나의 노력이 부족한 것인지, 시대에 뒤떨어져 가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생길 때도 있다.

제게 딱 맞는 껍질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분주한 소라게처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아직도 헤매지만, 내게 어울리는 집은 결국 작고 소박할 것이다. 몸의 집뿐 아니라 마음의 집도. 설거지할 때마다 4층의 높이까지 자란 키 큰 은행나무와 마주한다. 오늘 냉장고를 옮겨서 북쪽의 좁은 창에서 남쪽의 베란다 넓은 창으로 바람길을 냈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는 은행나무는 지난해 여름보다 더욱 성장한 초록빛 바람으로 나를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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