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2
DMZ. 2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8.05.3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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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휴일에 농부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못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집안에서 방콕이다. 하릴없이 빈둥대다가 오후에 서재정리를 했다. 케케묵은 책이며 상패들이 산더미 같다. 수많은 패들은 그간의 내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그중 가장 작은 아크릴 패에 눈길이 간다.

인디언 마크와 함께 미루나무가 담긴 그 아크릴 패 안에는 PANMUNJOM KOREA 21ST AUGUST 76. 아! 잊을 수 없는 그날. 1976년 8월 21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다.

점심때였다. 햄버거를 두어 입 떼어먹었던가?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그리고 스낵바 스피커를 통해 “PFC BAN Coming of to Office”반 일병 관내 있으면 빨리 상황실로 복귀하라는 호출이 있었다. 3분도 되지 않아 또다시 허리 아웃을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함께 근무하는 동료이자 가장 친한 룸메이트 에드워드 목소리다.

부랴부랴 벙커 안으로 들어서자 연실 울리는 무전기 소리가 머리를 곤두세우게 했다. 긴급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건이 교전도 아니고 곡괭이와 도끼 공격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전방 각지에 무전연락을 취하면서도 스스로 의아해했다. 잠시 뒤 한국군 장교들이 들이닥치고 상황은 더욱 혼잡했다. “도끼라니? 통역을 잘못한 게 아니냐? 다시 물어봐라” 나는 손짓 발짓 다해가며 수화로 묻고, 영어사전으로 확인해 봤지만 곡괭이 도끼 사건이었다.

그랬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 내 유엔군 측 제3초소 부근에서 미군 6명과 한국군 5명 등 11명이 전방 시야를(3초소에서 회담이 열리는 회담장 옆 소초가 보이지 않아서)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 노무자 5명을 경비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군이 곡괭이와 도끼 등을 휘두르며 기습 공격을 하여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하고, 9명의 경비병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이에 8월 21일 유엔군은 테프콘2를 발령한 가운데 항공모함 미드웨이와 엔터프라이즈를 파견했고 전투기와 B-52 폭격기 및 한국군 특공부대의 엄호 하에 미루나무를 완전히 절단하기에 이르렀다.

빛나는 일등병이라 했던가. 군대생활 8개월이 채 되지 않은 그야말로 말단 졸병이었다. 8월 18일 사건이 발생한 뒤 3일 만인 8월 21일 미루나무를 베기까지 완전군장으로 지냈다. 전방에 있던 포병은 후퇴하고 보병과 탱크부대는 3일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동하느라 길을 가득 메웠다. 전시에는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김일성이 선전 포고를 했느니. 사방 1m 안팎으로 포탄이 떨어진다느니, 우리가 후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자유의 다리를 폭파시킨다느니, 별의별 소문이 다 퍼지는 가운데 시시때때로 떨어지는 전시명령 때문에 무전기를 끌어안고 싸우며 간간이 짬을 내어 부모·형제 친구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기도 했다.

드디어 문제의 미루나무를 쓰러뜨리고 북한 김일성이 유감의 뜻을 표명함으로써 사건은 종결되었다. 이 사건으로 9월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남과 북으로 나누어 경비하게 되었다.

한 달 전 그곳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났다. 평화협정을 맺었고, 한 달 뒤인 엊그제 또다시 만났다. 북한의 남북 고위급 회담 무기한 연기 통보부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까지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흘렀다. 한반도에 위기감이 고조된 가운데 한 달 만에 극적으로 열린 이번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다. DMZ 안의 판문점은 여전하겠지. 8. 18도끼만행의 끔찍한 추억이 깃든 그곳에 다시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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