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을 보내며
오월을 보내며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5.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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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어느새 오월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모란도 작약도 피고, 라일락과 아카시아 향이 그윽했던 계절의 여왕 오월이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아직 넝쿨장미의 향연이 한창인데 말입니다. 정말 보내고 싶지 않은 오월인데 이렇게 무엇에 쫓기듯 보내야 하니 가슴이 몹시 시립니다. 아니 해야 할 일도, 찾아뵙고 감사드려야 할 분들도 많고 많은데 마음만 앞설 뿐 몸이 따라가지 못하니 야속하고 후회막급입니다.

아시다시피 오월은 가정의 달이자 보은의 달입니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부부의 날(21일), 성년의 날(21)이 이를 웅변합니다.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가족 구성원을 사랑하며 살라고, 부모님과 스승의 은혜를 잊지 말고 보은하며 살라는 메시지이지요.

그래요. 별과 환희가 내 손주여서 감사하고,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이 한없이 고맙고, 가르치고 깨우쳐주신 스승님이 감사하고, 집도 절도 없는 사람에게 시집와 이만큼 살게 해준 아내가 고맙고, 성년이 되어 사회의 일원으로 씩씩하게 살고 있는 자식이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돌아보니 그들이 있어 삶이 힘들어도 힘이 났고 살만했습니다. 아니 행복했습니다.

그럼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들과 고마운 분들에게 보은커녕 변변한 감사의 선물조차 제때 하지 못한 참 알량한 사람입니다. 하여 염치없지만 지면을 통해 이렇게 돈 안 드는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마움 잊지 않고 산다고,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오월을 의미 있게 아로새기는 날이 그뿐만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날(1일), 유권자의 날(10일), 발명의 날(19일), 석가탄신일(22일), 방재의 날(25일), 바다의 날(31일)이 이를 입증합니다. 하나같이 다 소중하고 가슴 벅찬 날이잖아요.

그러나 안타까운 날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 장군이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날(16일)도,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날(18일)도 오월이며, 제16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23일)도 오월이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아픔은 치유해야 하고, 아픈 역사는 잊지 말고 극기해야 합니다. 이 푸른 오월이 부끄럽지 않도록.

각설하고 금년 오월은 역사에 기록될 만큼 숨 가쁜 달이었습니다. 아니 한반도가 요동치는 달이었습니다. 다들 주지하다시피 금년 오월처럼 분단된 조국 한반도가, 휴전상태로 극한 대립과 갈등을 빚어왔던 남과 북이, 전쟁도 불사할 것처럼 으르렁거리던 남과 북이 핵 없는 한반도와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준 가슴 벅찬 달이었습니다. 지난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이른바 판문점의 봄을 몰고 왔고, 그 훈풍이 한반도와 세계를 들뜨게 했다가 느닷없는 북한의 어깃장으로 봄 감기에 걸려 잠시 주춤거리는 했지만 말입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는 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이중적 태도를 문제 삼아 계획된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는 맞불을 놓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와 한·미정상회담을 했고, 이어서 판문각에서 김정은과 벼락 치듯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등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꼬인 북·미정상회담과 평화의 불씨를 살려냈습니다. 당초 계획대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열기로 했고, 남과 북도 6월 1일 고위급회담에 이어 군사당국자회담과 적십자회담을 열기로 했으니 말입니다.

또 오월은 6·13지방선거로 인해 전국 방방곡곡에 선거열풍이 불었습니다. 좋은 일꾼을 세우기 위한 산통이 시작된 거죠. 그렇게 엄청난 일들을 벌여놓고 저기 오월이 무대 뒤로 사라지려 합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뿌려놓은 씨를 잘 거두라 손짓하며. 저 또한 오월의 푸른 마음으로 임의 건승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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