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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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5.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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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대학은 교수에게 방을 하나씩 준다. 교수들이 처음에는 정말로 좋아하다가 세월이 지나면 그 고마움을 잊는 경우도 많다. 어느 직장이 방을 하나씩 주나? 사장님이나 독방 쓰지, 회사생활에서 독방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의사나 변호사가 독방을 쓰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라. 그것은 환자를 위한, 손님을 위한 방이지 오롯이 자기를 위한 방이 아니다. 교수실도 학생이 찾아오니 손님맞이 방인 것도 맞다. 그래서 나는 늘 사탕을 소파 앞에 가져다 놓는다(분위기라도 부드럽게 하려고. 사탕이라도 까먹기 시작하면 오래 앉아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게 되므로.) 그러나 연구실의 목적은 꽉 박혀서 논문 쓰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늘 연구실을 감방에 비유한다(내 방에는 김대중 대통령 교도소 독방 사진이 20년간 너덜대는 채로 아직도 붙어있다).

그러나 이 방이 내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는 흘러간다. 연구실을 2~30년 쓰고 나면 누군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못 하나 박는 것도 두렵다. 가정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흘러가고 누군가는 집에서 살고. 집을 중심으로 본다면, 그것도 몇백 년씩 되는 전통가옥을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어떤 공간을 남겨주고 있을 뿐이다. 결국 몇 대(代)의 대는 현대(現代)를 위해 계속 물갈이되고 있을 뿐이다.

방송에서 아흔 된 할머니가 고사지내는 장면을 언뜻 보았다. 일흔 아들과 함께 장터에 나가 떡을 찌고 포와 실 및 돼지머리를 준비해서 고사(告祀)를 지내는 장면이었다. 오랜만에 예전에 듣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방에다는 성주 신을, 마당에는 터주 신, 그리고 부엌에는 조왕 신을 모셨다. 뜨거운 떡에 막걸리 한 사발이 올라간다.

성주는 우리말로 쓴다. `성주풀이'같은 예가 대표적이다. 굳이 한자로 바꾼다면 집을 가리키는 성(城)을 쓰고 그것의 주인(主人)이라는 뜻에서 성주(城主)가 맞겠다. 성주는 집의 신이다. 새집을 짓거나 이사 갈 때 성주풀이를 한다. 집주인이 나인 줄 알았더니 성주란다.

터주는 `터줏대감'이라는 용어로 많이 쓴다. 일상용어에서는 `터줏대감을 뭘로 보고 까부냐'는 식으로 쓴다. 곳곳에 터주가 있다. 대감(大監)은 정2품 이상의 벼슬아치니, 터주님은 관직도 높다. 하기야 터가 있어야 집을 짓고, 집을 지어야 사람이 되니 터주의 위세가 대단하다. 곳곳에 터줏대감들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개인이나 국가가 땅을 소유하는 줄 알았더니, 모두다 터줏대감에게 빌린 거란다.

조왕은 부엌 신이다. 부뚜막과 관련된다. 불을 때는 아궁이와도 연관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바로 부엌에서 비롯되니 조왕신의 관찰이 필요했다. 그 양반이 화가 나면 배탈 날 수도 있고, 그 양반이 기분 좋으면 잘 먹어 병도 낫는다.

산신(産神) 할머니는 자주 `삼신'으로 불리지만 산신이 맞다. 생명의 잉태와 출산을 도와주는 신이다. 우리 할머니만 하더라도 막내 고모를 첫딸의 첫 아들보다 늦게 나았으니, 현대 이전에 여인은 30년 중 10년을 임신하고 있어야 했다. 대가족이라면 한 집에 하나는 늘 회임중인 셈이다. 그러니 산신 할머니가 소중하다. 점지를 잘 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안방 아랫목에 산다.

신들이 떠났다. 그리고 사람만 산다. 곳곳에 터주가 있었는데 다들 어디 갔을까? 어쩌다 사람이 신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심술 속에서 살다 죽는 것을 잊었을까? 덕분에 젊은이들은 아이 낳기를 꺼리는 모양이다. 이러다 동티난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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