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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18.05.2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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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언제부터인가 민영의 마을이 어수선하더니 점점 시간이 갈수록 시끌벅적하였다. 그 이유는 느티나무가 서 있는 한 복판을 가로 질러 길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길을 내지 못할망정 느티나무를 베어서는 안 된다는 쪽과 길을 위해서라면 느티나무를 베자는 쪽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느티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마을의 상징이자 수호신처럼 살아온 나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눈에는 그저 커다란 나무에 지나지 않았다. 나누어진 사람들은 여러 차례의 밀고 당기는 논쟁 속에서 어떠한 결정이나 진전도 보지 못하였다. 그것은 나누어진 사람들이 결정을 지을 수 있는 구성원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어찌 결정해야 할지를 투표에 부치기로 하였다.

우선 길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의안이 부딪쳤다. 그런 와중에 마음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 중에는 어느 쪽에 서야 할지 곤란함을 겪고 있었다. 차라리 정해 놓은 바가 있다면 그대로 따라가면 그만이겠지만 정해 놓은 바가 없다고 해서 생각 없이 표를 툭 던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상당수가 있음에도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았을 뿐이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결정의 향방이 그들 손에 달려 있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들의 선택은 정해놓은 자들처럼 뚜렷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설득력만 지닐 수 있다면 기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누어진 사람들은 그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더욱 더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길을 내어야 한다는 쪽으로 결정하였다. 민영은 과연 그 결정 속에는 사람마다 몇 %의 동의를 하고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을까 궁금했다. 문제는 또 한 번의 투표였다. 길을 내자면 느티나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의견은 베지 않고 길을 내자는 것이었다. 나무를 그냥 두고 길을 내는 데는 크고 작은 무리가 따르는 듯했지만 많은 사람은 나무를 베는 것을 원치 않는 쪽으로 마음을 두고 있었다. 민영은 이럴 바에는 무엇 때문에 다투었나 하는 의문이 갔다.

하지만, 애당초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한쪽으로만 길을 낼 것인지 나무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길을 낼 것인지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또다시 투표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 속에는 그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하였다.

정해진 자와 정해지지 않은 자가 있다. 투표로 결정과 결과를 만드는 데 있어서 처음부터 의도를 정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다수의 사람들 중에는 100%를 향한 쏠림이 아니라 어쩌면 50:50에서 1% 기울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1%의 기울임으로 51:49의 아주 얇은 수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1%와 100%의 무게차이가 같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동의는 언제나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조그만 의혹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들의 표는 언제라도 흔들거리며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평소에 그들에겐 침묵이 존재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1%의 기울임으로 모든 것이 결정지어질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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