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까
  •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8.05.29 1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개 눈엔 똥만 보인다 했던가? 휴대폰을 들이대고 사진 찍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연신 촬영이다. 발걸음은 분주하고, 손가락의 클릭수와 속도는 더해가며, 가슴은 벅차오른다.

`F1963', 고려제강이 1963년도에 만든 와이어 공장이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킨 복합 문화공간이다. 2008년까지 45년 동안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이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된 이후로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고, 사람과 문화중심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공간, 어쩌면 공간 곳곳이 흡사 청주연초제조창을 보는 듯했다. 버려진 공간, 비워진 공간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과 역사의 시간을 반영, 재생의 극치를 보여준 조병수 건축가의 철학이 담긴 공간.

청주연초제조창의 외벽은 빨간 벽돌의 조적이므로 현재 시멘트를 제거해서 그전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벽 일부를 잘라내어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도 포함해서, 돌아온 반응은 건축도 모르는 사람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일축되어 다시는 언급도 할 수 없었는데, F1963은 버젓이 바닥과 벽을 잘라내어 벤치로, 테이블로, 디딤석으로 쓰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청주는 안 된다는데 부산은 해 놓았다.

기존의 시멘트 바닥을 살려 놓았으면 하는 주장에, 재생이란 단어를 언급하며 대리석이나 화강석으로 새롭게 시공해야 한다는 댓구, 그런데 F1963의 바닥은 와이어를 생산하던 시간을 담아내고 있다. 거기에 줄리안 오피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당시 그레이팅이니, H빔이나, 철판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니. 그러면서도 천장 마감재나 벽면의 새로운 시설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배치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처음엔 반대도 많았다 한다. 하지만,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재생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려는 의지가 지금의 F1963을 만들어 냈다는 소리에 `난 왜 이 모양이지?'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어느 한 공간은 건물의 철거과정에서 나온 시멘트 덩어리가 설치작품처럼 놓여 있다. 철골과 자연스런 배치, 어느 전시작품이 이리 멋스럽고 강렬할 수가 있을까? 이런 작품(?)은 덴마크 국립박물관에서도 본 바 있다. 건물의 철거 과정에서 나온 흔적들을 유물들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거쳐 덧붙여지면서 지어진 연결의 흔적도 그대로 보존하고, 기존 건물을 최대한 보존하려 새로운 마감재를 선택하는 세심한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그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고 재생의 활용을 택해 여기저기에 배치해 역사의 시간성을 이어나가는 모습에 휴대폰의 렌즈는 대상에 이끌려 다니고 있었다.

테라로사, 프라하 993, 예스24, 복순도가가 입점한 상업공간도 문화적 콘텐츠를 반영한 것이어서 옛것의 공간에 대한 기억을 하고 새로운 창의적 활동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무엇하나 버리지 않고, 보존하되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새로운 것과의 조화를 통해 창의적 사고를 이끌어내고, 옛것에 대한 기억의 가치를 다양한 역할의 공간으로 담아낼 수 있는 콘셉트가 우리와 비교된다.

공간을 제대로 알고 브랜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함에 더욱 많은 사람의 조언을 담아 실현해야 할 것이다. 2011년 공예비엔날레 당시, 핀란드의 건축전문가를 시작으로 많은 사람이 이 공간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덴마크 문화청의 국제교류를 담당하는 사람도 이런 공간에서 자국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왕세자와 왕세자비를 개막식에 참석하게 하겠다 하고 청주의 문화적 수준을 평가했다.

비어 있어 가치가 있는,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가치 있는 공간이 망가지는 것은 아닌지? 지금이라도 공간에 대한 좀 더 신중한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