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公約)과 공약(空約)
공약(公約)과 공약(空約)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8.05.28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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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지난달 숨진 지 2개월여 만에 발견된 증평모녀사건은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생활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오랜 기간 가족과 이웃의 무관심 속에 시신이 방치된 것이 알려지면서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복지시스템은 도마 위에 올랐다. 복지예산이 전체 예산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지원정책이 현장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이런 비난 여론에는 정부의 지원정책을 시민들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홍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도 크게 작용했다.

실제 지자체마다 갑작스런 위기 상황에 몰려 생계에 위협을 받는 가구에 대해 긴급복지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긴급복지지원은 세대 내 주소득자의 사망이나 질병, 가출, 교도소 수감, 이혼, 단전, 폐업 등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 생계비와 의료비, 주거비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기준에 맞으면 최대 6개월까지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복지정책이 어느 궤도에 올라와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꼭 필요한 사람이 모른다면 있으나 마나 한 정책일 뿐이다. 지원사업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그 자체를 알지 못했을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증평모녀사건은 그만큼 복지정책과 복지현장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5일 충북도는 도내 고위험위기가구에 대해 실태조사를 해 분석자료를 내놓았다. `증평 모녀사건' 발생 이후 도내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한 것으로 32만6000여가구 중 83가구가 고위험 위기가구로 밝혀져 지자체의 긴급지원이 진행됐다. 이외에도 5474가구가 3개월 이상 관리비를 체납했고, 979가구가 한부모가정이거나 부모의 소득활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복지사각지대에 대한 지원사업이 절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는 공동주택이라는 한계성에도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복지시스템의 허점을 줄이기 위해 지자체 복지담당자들이 직접 조사했다는 점, 지역주민의 삶의 지표를 가감 없이 드러내 공유함으로써 복지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고자 했다는 점, 그리고 홍보성 기사로 도배하는 도정이 아니라 지역민의 삶의 질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충북도를 시작으로 시군별 위기가구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정책과 현장의 괴리도 조금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조사는 개인 정보와 맞물려 있어 어려움이 많다. 시군 담당자들이 위기가구를 방문해 어렵게 조사가 진행됐다”는 도 관계자의 전언에서 복지 현장의 어려움도 읽힌다.

6·13지방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 후보자들의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단체장 후보자들은 분야별 공약(公約)을 발표하며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당선이 목표이다 보니 지방 재정을 고려한 공약은 뒷전이고, 표심을 공략하는 달콤한 복지관련 공약이 우선이다. 더구나 이익단체나 관련단체들의 요구를 수용한 후보자들의 표심 공약은 오히려 공약(空約)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공약 실현 가능성은 유권자의 권리로 꼼꼼히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넘쳐나는 후보와 공약에 정작 시민들은 옥석을 가리기도 쉽지 않다. 허나 분명한 것은 정치는 지역주민의 삶을 향상시키고 살기 좋은,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일이다. 증평모녀사건을 계기로 법 개정은 물론, 현장성을 담보한 공약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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